<씨네21> 비사 가운데 ‘가짜 남동철 기자 사건’이라는 게 있다. 이렇게 말하면 두둥 북소리도 나고 뭐 대단한 일 같은 느낌이 있지만 그냥 편의상 나 혼자 멋대로 그렇게 이름 붙인 사건이다. 아마 8년도 더 된 일일 것이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가 동숭씨네마텍에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오늘 극장에 자리 빼놨다”는 전화였다. “자리를 빼놓다니, 무슨 말이죠?”
동숭씨네마텍에선 내가 전화해서 오늘 영화 보러 온다고 좌석을 부탁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저 그런 전화 한 적 없는데요.” 상대편에선 무슨 소리냐며 분명히 나에게서 전화가 왔고 좌석을 4개 마련해놨다고 말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내가 단기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걸까? 그러나 흥분 모드에서 평정 모드로 바꾸고 생각해보니 짐작가는 게 있었다. 그래, 전에도 이런 전화가 온 적 있었지? 추리를 해보니 결론은 하나였다. 누가 내 이름을 대고 공짜로(!) 영화를 본다는 얘기였다.
그날 남동철 기자가 영화보러 온다는 시간에 동숭씨네마텍에 갔다. 상영이 끝날 때를 기다려 스스로 남동철 기자라 말한 작자에게 다가갔다. “저 혹시 남동철 기자님이세요?” “네, 그런데요.” “저, 그런데, 어쩌죠. 저도 남동철 기잔데.” 사내는 당황하는 기색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조용한 데서 얘기하죠.” 헉~, 이건 뭐지. 너무 당당해서 순간 혼란스러웠다. 대체 이 남동철 기자는 누구인가? 난 임꺽정도 아닌데 어떻게 가짜가 나올 수 있는가? 몇 가지 추궁 끝에 알아낸 사실은 그가 내 이름을 대고 여러 극장에서 공짜로 영화를 봤다는 것과 지갑 안에 위조된 내 명함 외에 은행 대리 명함과 학생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친구를 어떻게 한다? 그는 “그냥 영화가 보고 싶어 그랬다”고 말했다. 경찰에 넘겨봐야 별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훈계하고 그만 가보라고 했다. 그는 악수를 청했다. 얼결에 가짜 남동철 기자와 악수까지 하고 헤어졌다. 참으로 기분이 묘했던 하루였다.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오른 건 내가 둘이면 어떨까 싶어서다. 지루한 회의 시간엔 남동철2를 보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 땐 남동철1이 가는 거다. 서류에 사인하는 일은 남동철2를 시키고 영화보는 건 남동철1의 몫으로 남기는 거다. 아마 한쪽은 놀고 한쪽은 일하는 시스템이면 완벽하겠지. 그러자면 뇌의 구조도 둘이 완전히 달라야 할 것이다. 일하는 데 필요한 뇌와 노는 데 필요한 뇌를 적당히 잘라서 둘로 나누면 저마다의 소질을 갈고닦아 남동철 1+2을 훌륭한 인간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물론 문제가 하나 있다. 월급이 한 사람 몫이라는 것. 내가 둘이어도 두 사람치 월급 주는 회사는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평소엔 일심동체였다 특별한 필요에 따라 분리하는 편이 낫겠다. 변신합체 로봇 같은 거 말이다.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예전에 만난 가짜 남동철 기자를 잘 키웠으면 필요에 따라 남동철2가 돼줄 수 있지 않았을까?
요즘 일거리가 늘어서 헛소리가 나오나보다. 제동장치를 켜보자. “이봐, 남동철2. 너, 내 몸으로 돌아올 시간이라고! 어서!”
PS. 격주로 이창 컬럼을 맡아주셨던 안규철님이 더이상 쓰기 어렵다고 알려왔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안규철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독자 여러분께는 조만간 새로운 이창 컬럼을 마련하겠다고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