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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괴물> 프리프로덕션 [4] - 감독 인터뷰
사진 오계옥문석 2005-03-15

봉준호 감독 인터뷰

“이번엔 <에이리언>의 한강수 타령쯤 되려나”

-웨타와는 일이 잘 진행됐다고 들었다.

=그렇다. 사실, 이 영화에 관해 고민할 때 한국영화의 예산 수준에서 이런 완성도 있는 3D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는데 일단 한고비를 넘긴 셈이다. 경험이 풍부한 그들로부터 내 스스로 자신이 없었던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듣고 나니 한시름 놓인다. -그쪽에선 어떻게 받아들이던가.

=처음에 접촉할 때는 한국에서 SF 스타일의 영화를 만든다니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이번에 만났을 때, 웨타의 창립자이자 수장인 리처드 테일러는 우리가 시각효과 예산을 안 밝히니까 초조해하더라, 아주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를까봐. 멀리서 왔는데 거절하기도 힘든 것 아니겠나. 어쨌건 우리가 300만달러 수준이라고 하니까, “영화 전체 예산이?”라고 황급히 묻더라. 그래서 다시 “아니, 시각효과 예산만”이라고 했더니 너무 기뻐하면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더라. 그때부터 일이 빨리 성사됐다. 그들은 우리가 준비한 괴물 디자인을 보더니 아주 동양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괴물 디자이너인 hellnaut에게 스카우트 제의도 했다.

-시나리오를 보니 아주 무시무시한 상황과 코믹한 상황이 계속 중첩된다.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더라.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는 건지…. 재난이라는 게 무섭고 비극적이고 하지만, 반대로 희극적인 상황도 수반된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나 역시 충격을 받고 슬펐는데, 그때를 하루하루 돌이켜보면 무너진 백화점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골프채를 가져나오거나 수입매장을 뒤진다든가, 시내 도둑들이 다 모인다든가 하는 상황이 웃기지 않나. 극한의 재앙이 닥쳤을 때 희비극은 항상 같이 나타나는 것 같다. 특히 저런 대책없는 가족들이 주인공이니 포복절도할 일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 없을 거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가족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멋있게 레이저총 같은 것으로 싸우는 게 아니니 웃길 수밖에. 물론 대놓고 코미디를 의식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재앙이란 그런 느낌 같다. 마치 부조리극 같지 않나.

-영어 제목 <The Host>는 좀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영문 제목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아무튼 ‘host’란 단어가 중의적으로 해석됐으면 좋겠다. 기생당하는 동식물을 말하는 ‘숙주’라는 뜻은 뭔가 생물학적이고 괴물영화적인 느낌을 준다. 또 하나, 이 단어의 ‘주인’이라는 의미는 정치·사회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정치·사회적 함의라면.

=한국사회와 관련된 것인데, 개봉 전까지는 절대 밝힐 수 없다. 아무튼 그런 요소를 이번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낼 생각이다. SF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풀어내는 방법이다. 1950년대 할리우드 SF영화가 매카시즘의 반영이라는 식의 비평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 전통을 재미있게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삭제된 장면이지만 미국과 소련 사람들이 서로 케이크를 던지면서 싸운다든지, 핵 미사일 위에서 카우보이 행세를 한다든지 하는 그런 분위기로 말이다. 그런 부분이 이 장르에 잘 맞는 것 같고 영화에 묘한 활기를 주지 않을까.

-한강이라는 공간을 선택한 이유가 특별히 있나.

=그것 또한 내 취향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한강 둔치는 서울 시민이라면 밥 먹고 왔다갔다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이다. 게다가 서민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거기서 매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가족이나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 밤을 둔치에서 지새우는 사람들 모두 서민들이다. 이 일상적이고 서민적인 공간이 괴물의 출현으로 가장 드라마틱하고 낯선 공간으로 변한다.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에서 그랬듯, 일상과 판타지의 충돌, 장르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의 충돌, 그게 결국 내가 추구하는 영화의 성격인 것 같다.

-한 공간에서만 촬영이 이뤄지면 단조롭지는 않을까.

=같은 한강인데 드라마의 전개에 따라 느낌을 변화시키는 게 목표다. <살인의 추억> 때는 수십개로 흩어진 촬영지를 하나의 광선과 톤으로 묶으면서 하나의 마을 같은 느낌을 주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늘 보던 한강인데 어떨 때는 친숙하게 보이고 어떨 때는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여름철에 촬영하다보면 장마를 만날 텐데.

=일부러 장마철을 끼고 찍는다. 먹구름이 끼고 비가 오고 하는 장면을 넣는다.

-참고한 영화가 있는지.

=<싸인> 외에는 스필버그의 <죠스> 같은 영화도 관련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해 처음 얘기 꺼낼 때 사람들은 괴물의 크기에 혼란스러워 하더라. 대개 <고질라> 같은 거대한 괴물을 연상하는데, 그게 아니라 <에이리언>에 나오는 괴물 정도인데 말이다. <죠스>도 넓게 보면 괴물영화이고, 우리 영화에 나오는 괴물도 돌연변이된 생물체이니까. 어쨌든 결국 비슷한 텍스트는 없는 것 같다. <살인의 추억> 때도 마케팅팀에서 레퍼런스를 물어봐서 그런 것은 딱히 없고, 그냥 ‘농촌 스릴러’나 ‘<쎄븐>의 <전원일기> 버전’이라고 답했는데, 이번엔 ‘<에이리언>의 한강수 타령’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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