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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괴물> 프리프로덕션 [1]
사진 오계옥문석 2005-03-15

5월 촬영 들어가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괴물> 프리프로덕션 공개

개봉까지는 1년하고도 5, 6개월이 남았고, 아직 촬영에도 들어가지 않은 태아 상태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관심을 잡아끄는 프로젝트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괴물>(가제)이 그것. 지난해 부산영화제 PPP에서 소개돼 이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 영화가 다시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특수효과를 담당해 시각효과 분야에서 세계적 맹주로 부상한 뉴질랜드의 웨타 디지털과 함께 작업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물론, <괴물>을 주목하는 이유가 봉준호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과 웨타의 기술력이 결합돼 한국 영화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을 통해 장르영화를 자신의 방식대로 경쾌하게 변주한 봉준호 감독의 호러 또는 괴수 장르영화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이나 특이한 방식으로 정치·사회적 어젠다(agenda)를 제시한다는 차원에서도 이 영화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봉테일’이라는 단어를 한국의 영화용어로 등재시킬 만큼 꼼꼼하기로 소문난 봉준호 감독의 1년여간에 걸친 <괴물> 프리프로덕션 과정과 성과를 살펴본다.

간지럼질을 예상하고 있던 순간에 돌연한 돌려차기를 얻어맞는 것 또는 삼겹살을 기다리는 와중에 뜬금없는 생선회가 밥상에 오른 격이라고 할까. “봉준호 감독이 SF영화를? 그것도 괴물영화를?” 아무리 봉준호 감독이 성동격서, 신출귀몰의 달인이라 해도 <살인의 추억>의 후속작으로 ‘한강에서 괴물이 출현하고 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던 일가족이 혈투를 벌인다’는 기괴한 내용의 작품을 만든다는 소식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환부를 아프게 도려냈던 그가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다니. 한때 <더 리버>라는 프로젝트명으로 불리다가 지난해 부산영화제 PPP를 계기로 <괴물>이라는 가제를 갖게 된 이 영화는,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이 영화는 멀리는 18년 전, 가깝게는 4년 전부터 감독의 뇌리를 붙잡고 있던, 봉 감독의 ‘꿈의 프로젝트’였다.

18년 전의 꿈, 4년간의 ‘생활 헌팅’

서울시민에겐 지극히 일상적 공간인 한강. 하지만 주변환경에 따라 한강변의 표정은 사뭇 달라진다. 흐리거나 안개가 끼었을 때의 한강은 무언가 음습한 기운마저 느끼게 한다. <괴물> 속 한강의 이미지 또한 일상적인 느낌에서 차츰 공포가 서린 공간으로 변화할 것이다.

<괴물>의 시작은 봉준호 감독의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1986년 또는 1987년의 어느 날, 그는 창 밖을 통해 이상한 광경을 목도한다. 그가 살던 잠실 장미아파트에선 잠실대교가 보였는데 “똥덩어리 같이 시커먼 물체가 교각을 올라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수험생 특유의 스트레스 탓이었는지, 실제 괴생물체였는지 알 수는 없어도 이날의 사건은 감독 지망생 봉준호에게 목표를 던졌다. “영화감독이 되면 한강변에 나타난 괴물과 사람들이 맞서 싸운다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겠다.” 그의 머릿속 서랍 안에 싱싱하게 간직돼 있던 이 프로젝트는 10여년이 흐른 2001년에야 비로소 다시 튀어나온다.

당시 <플란다스의 개>를 좋게 봤던 청어람 최용배 대표는 봉 감독에게 작품을 함께하자고 제안을 했다. 이미 <살인의 추억>을 만들고 있던 봉 감독은 자신의 세 번째 작품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이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한강철교 사진에 네시의 모습을 ‘포샵질’로 오려붙인 이미지와 함께. “이런 분위기라고 했더니 최 대표가 우선은 허걱, 하더라. 그래도 의외로 좋아하면서 바로 오케이했다.” 그는 <살인의 추억>에 돌입한 뒤에도 차기작 준비를 병행했다. 틈틈이 아이와 한강 둔치에 나가거나 유람선을 탈 때마다 강과 다리 주변을 사진으로 남겼다. 강을 건널 때나 올림픽대로, 강변북로를 달릴 때도 한손엔 운전대를, 다른 손에는 카메라를 쥔 채 촬영을 했고, 덕분에 대형사고 위험도 몇번씩 겪었다. 이런 ‘생활 헌팅’ 덕에 한강과 그 속에 은닉한 괴물의 이미지는 점차 명쾌해져갔다.

<괴물>의 기본적인 구도는 2003년 <살인의 추억>을 끝낼 때쯤 대략 정해졌다. 키워드는 가족이었다. 한강, 괴물, 사투 등의 단순한 키워드에 이를 관통하는 가족이라는 척추가 삽입된 데는 M.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이 영향을 끼쳤다. 시골에 고립된 가족이 소박한 방식으로 외계인에 맞선다는 이 영화는 그에게 묘한 울림을 줬다. 그의 머릿속에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죽어라 고생하는 가족의 이미지가 자꾸 떠올랐다. “지리적으로는 소통이 가능하지만 사회적, 계층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괴물과 싸우는 게 더 처절하고 가슴 아프고 뭔가 한국적인 느낌의 사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들 가족이 소외된 상황에서 외롭게 싸우게 되는 상황은 물론 한국사회라는 또 다른 ‘괴물’이 배태한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가슴 아프지만 우리 경우엔 재앙이 닥칠 때, 그 자체보다도 정부나 공적 영역이 이를 수습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곤 한다. 그런 탓인지 재앙 앞의 사람들은 공적인 영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아는 사람 중에 의사가 있는데’, ‘우리 형이 경찰이니까’라며 온갖 사적 채널을 통해 발버둥친다.” 결국 딸과 손녀와 조카를 잃은 이들 가족이 경찰과 군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나서는 것도, 그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운 것도 이런 한국적 상황의 산물이란 얘기다.

그렇게 만들어진 <괴물>의 대략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박강두와 아버지 박희봉은 한강변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며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강두에게도 유일한 희망이 있으니 그건 중학생 딸 현서다. 어느 날 과거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결과로 괴물이 한강변으로 올라와 유람객들을 덮치고, 그 와중에 강두는 괴물이 현선을 통째로 삼키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된다. 이 사건을 놓고 강두와 희봉, 그리고 강두의 동생 남일과 남주 등 가족들은 티격태격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당국 대신 잔인무도한 괴물을 없애기 위해 떨쳐 일어난다. 희봉이 평소 알고 지내던 총포상으로부터 장비를 빌려 무장까지 한 가족은 결국 한강변에서 괴물과 혈투를 벌이게 된다.

한국사회라는 ‘괴물’을 ‘가족’이란 실타래로 묶다

희한한 점은 극도의 공포, 슬픔과 배꼽 빠지는 코미디가 거의 동시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보일러 김씨의 괴담 등이 등장하는 <플란다스의 개>나 잔학한 살인과 형사들의 원시적인 수사방식이 충돌하는 <살인의 추억>에서도 이같은 희비극의 묘한 충돌은 존재했지만, 이번엔 좀더 심화된 느낌이다. 또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도와 동떨어진 듯한 어떤 존재, 즉 영문 가제 ‘The Host’가 의미하는 무언가가 등장하는 것. 이 요소는 괴물의 출생배경과 한국사회의 잠재적 공포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불행히도 “영화 개봉 전에는 절대 공개할 수 없다”는 봉 감독과 제작사 입장 때문에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이는 이 영화의 사회·정치적 함의가 담긴 급소인 셈이다.

이야기와 함께 <괴물>이 관심을 끄는 점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괴물의 표현방식이다. 사실, 괴수영화는 1960∼70년대와 최근의 심형래 감독 외엔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주류 충무로로서는 미지의 영역. 봉 감독은 이에 대한 해법을 웨타 디지털에서 찾았다. 퀄리티가 아주 높은 3D 그래픽을 원했던 그는 2001년 영화에 대한 구상을 펼치기 시작할 때부터 이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때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공개되기 전이었지만, 피터 잭슨의 <천상의 피조물들>이나 <프라이트너>를 눈여겨봐뒀던 그는 첫째 피터 잭슨과 B급영화 시절부터 함께한 곳이며, 둘째 한국 프로젝트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적 사고의 소유자라는 막연한 추측, 그리고 뉴질랜드 달러가 압도적으로 싸다 등의 이유로 이곳과 접촉을 시도했다. 마침 <남극일기>를 준비하던 임필성 감독이 이곳과 협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간접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류성희 미술감독 인터뷰

“노란색이 뒤틀린 유머를 표현할 것이다”

-전체적인 미술 컨셉은.

=애초엔 리얼한 세팅에 관심이 많은 봉 감독의 성향 탓에 미술쪽도 최대한 사실적인 쪽으로 방향을 맞추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봉 감독은 이번 영화에 낯설고 아이러니한 요소들이 있고, 그게 뒤틀린 유머 역할을 할 것이므로 적극적으로 미술적 표현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더라. 그러니까 대사에는 드러나지 않는 요소들을 미술로 표현하겠다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좀 어렵다.

=그동안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 참여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컨셉을 잡지 못했고, 이 영화가 아직 감추고 있는 부분이 많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이 영화의 톤은 괴물이 나타나기 전과 괴물이 등장한 이후가 많이 달라진다. 특히 괴물의 존재 때문에 출입이 전면통제되는 한강의 분위기는 비도 내리고 음울해진다. 그런 통일된 톤과 컬러 속에서 우주복 스타일의 방역복을 입은 정부 관계자들이 등장한다. 컬러도 노란색을 써서 튀게 보인다. 이를 통해 정부나 관료의 대응을 비꼬고 조소하고 뒤틀어버리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노란색이 재미있는 요소가 될 것 같다. 그런 식의 또 다른 발언이 미술로 드러날 수 있을 것 같아 재밌을 것 같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까다로운 점은.

=표현의 수위다. 현실적인 것과 낯선 것을 조화하는 게 가장 어렵다.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관객이 믿을 만하게 표현돼야 한다. 판타지로만 받아들이는 <킹콩>이나 <고질라>와 달리 말이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이라 진짜처럼 믿게 만들어야 한다.

-봉 감독과 두 번째 작업인데 미술작업에 있어 까다롭나.

=완벽하게 본인의 자장 안에서 소화돼야 납득하는 편이다. 까다롭긴 하지만(웃음) 아주 구체적이기도 해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괴물 디자이너로 hellnaut를 기용했다.

=일단 한국에 이런 분야 업무를 하는 사람이 흔치 않아 뽑는 데 힘이 들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프리랜서로 일을 해 자기 세계에 빠져 있기 일쑤다. 그의 경우 봉 감독 작품을 좋아하고 포트폴리오의 드로잉 솜씨가 좋았다. 특히 소년 같은 이미지에 같이 일하기 좋은 성격을 가졌다. 결국 아무리 좋은 아티스트라도 함께 일할 때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으면 안 되는데 안심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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