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비디오를 보는 남자>란 소설을 본 적이 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론, 엘리트지만 실직하게 된 남자가 동네 어귀에서 자그마한 비디오대여점을 하면서 겪는 일상을 그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당시 그 책을 읽게 된 경위는 내 주변의 누군가가 그 소설에 묘사된 부분 중 ‘주인남자가 문 닫을 시간에 급히 뛰어든 중년의 연인과 포르노를 함께 본다’는 설정을 목소리 높여 비난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주장은 ‘비디오대여점을 포르노나 취급하는 잘못된 인식’에 대한 항변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의 생각은 ‘소설은 소설일 뿐’이란 생각이었다.
요즘 들어 이 소설 같은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선데이서울> 같은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고객 중 에로영화만 보는 중년의 아저씨가 있는데, 약간 눈의 초점이 흐리고 말도 어눌하게 하는 그런 분이다. 초반부엔 말없이 비디오만 빌리다가 언제부턴가 “이 영화… 재밌… 나…요?”(어눌하고 더듬는 말투)로 시작한 대화는 이제 성희롱에 가까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한국 에로영화의 재킷들은 수치심이 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에로영화 재킷을 들이밀며 해당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을 해독할 수 없는 말투로 나에게 이야기한다. 고객에게는 항상 친절해야 하므로 적정 수위에서 듣는 척 내 일을 했다. 며칠 전부터 그는 자기가 보유한 영화(?)들을 나에게 보라고 갖다주기도 한다. “저, 이런 영화 안 봐요”라고 분명하게 내 의사를 밝히는데도 그의 집요함은 매일 계속된다. “내… 숭… 떨지… 말… 고”라면서.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내가 내숭떤다고 생각할 만큼 진지하다. “당신, 이거 성희롱이야”라는 나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그는 우리와 주파수가 안 맞는다. 어찌해야 할까?
이주현/ 비디오카페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