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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정혜와 은주

‘아, 맞아, 겨울엔 원래 눈이 왔었지.’ 그런 생각이 든 날이었다. 지난 2월22일, 참으로 오랜만에 서울이 하얗게 보이던 날, 배우 이은주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침 그 시간엔 서울극장에서 <여자, 정혜> 시사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를 보다말고 휴대폰을 받고 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나지막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 상영 도중에 참 매너들도 없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이은주의 자살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25살, 이제 꽃피는 나이에 어떤 절망이 그녀를 삼켜버린 걸까? 딱 한번 스쳐가듯 그녀를 본 적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현장에서. 벌써 5년 전 일이다. 그럼 20살 무렵의 이은주였을 것이다. 그때도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있었던가? … 잘 기억나지 않는다.

때로 어떤 영화에 대한 기억은 영화 내용보다 영화를 보는 환경에 더 크게 지배를 받는다. 이은주의 죽음과 아무 상관없는 영화지만 내 머리 속에 <여자, 정혜>는 이은주와 관련된 영화로 남을 것 같다. 어쩌면 이은주도 영화의 주인공 정혜처럼 고통스런 상처가 있었을지 모른다. 함부로 남한테 말 못할 아픔,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섣불리 짐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기가 감당하기 힘든 짐을 안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여자, 정혜>에서 정혜는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식물처럼 산다. 매일 TV에서 홈쇼핑 채널을 보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울리는 알람을 끄지 않는다. 적게 먹고 적게 말하고 적게 움직인다. 사회와 만나는 지점을 최대한 줄이는 걸로 아픈 과거를 잊으려는 그녀의 안간힘은 그녀의 상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루하고 답답하다. 머리를 쥐어박으며 “너 왜 그렇게 사니”라고 말하는 가족이나 어른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뿌리 내린 곳에 주어진 양분을 간신히 빨아먹으며 지내는 정혜에게 죽음은 손만 뻗으면 가능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정혜의 일상을 다독이는 몇 가지 사건을 보여주지만 기대를 갖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파트 마당에서 주운 새끼 고양이는 소파 밑에서 나오지 않고, 저녁을 먹으러 오겠다던 남자는 찾아오지 않는다.

아마 햇빛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정혜가 삶을 지탱하는 힘은 거기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베란다의 화초에 물을 주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도무지 눈을 뜨고 싶지 않은 하루를 시작하게 만들고, 우체국의 갑갑한 공간에서 벗어나 푸르른 나무를 보게 한 건 모두 따사로운 햇빛이 한 일이었다. 정혜의 등뒤에 내리쬐던 햇빛을 떠올리니 이은주에겐 빛을 안겨줄 태양이 보이지 않았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무엇이든 태양을 가리고 있던 것이 조금만 옆으로 비켜섰으면 햇살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부디 그녀가 늘 따뜻한 햇빛이 있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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