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모든 나라에는 저마다의 ‘청춘 상경기’가 있나보다. 한국에서는 순진무구한 갑순이가 첫사랑 갑돌이를 찾아 서울역에 내리면, 아저씨 을이 보따리를 훔쳐가고 이어 아저씨 병이 나타나 성매매 업종에 취업시켜버린다. 일본에서는 꿈 많은 소년 이치로가 도쿄 우에노 역에 내리면 되바라진 소녀 마루꼬가 가방을 훔쳐가고, 이치로는 자동차 정비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폭주족의 바이크에 매달린 마루꼬를 발견한 뒤 그 역시 모터바이크의 매력에 빠져버린다. <CB感. Reborn>(학산문화사 펴냄)은 바로 이 일본판 청춘 상경기를 미래로 옮겨간 작품이다.
서기 2XX4년. 열다섯살의 소년 쥰은 지구에서 가장 먼 콜로니, 달리 말하면 우주 촌구석인 야마타이에서 대학 입시 학원을 다니기 위해 지구로 유학을 온다. 그가 찾아가는 곳은 형이 살고 있는 도쿄로, 고향에 비하면 엄청난 도회지이지만 지구에서는 집값 싼 변두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미 지구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통일된 정치 체제로 재편되었고, 권력에서 이탈된 시민들이 도쿄와 같은 지하 도시에서 우굴대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형의 집을 찾아갔지만 행적도 알 수 없고 라면 가게에서 배낭도 도둑맞은 쥰, 다행히 사교성은 좋아 형의 옛 애인에게 얹혀살며 자동차 정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럭저럭 학원에 다닌다. 그리고 자신의 배낭을 메고 있는 사내를 쫓아가 싸우다가 노부 패거리를 만난다. 운명의 바이크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쥰이 살고 있는 미래의 지구에서는 ‘바이크’라는 말을 꺼내면 안 된다. 그 즉시 공안 경찰이 달려와 그를 연행해가도 할말이 없다. 왜냐하면 바이크는 이미 오래전에 유물이 되어버린 존재이며, 이 사회의 정의를 침범하는 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건설된 공안 국가는 산업혁명 이후 황폐해진 자연을 되살리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한다. 인간들은 모두 지하 도시로 보내 완벽하게 통제하고, 극소수의 지배층만 지상에서 거주하며 숲과 새들을 되살리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 파시즘 체제 아래에서 일탈의 자유를 즐기는 바이크 게릴라들. 지하 갱도의 쓰레기더미에서 엔진을 찾고, ID 카드를 조작해 고속도로를 몰래 달리고, CCTV로 추적하는 경찰들을 기민한 순발력으로 따돌리는 패거리들 속에서 쥰은 바이크의 자유를 깨닫게 된다. 열대우림보다, 도롱뇽보다, 바이크가 소중한 소년들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