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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없는 교훈극,
김도훈 2005-03-08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를 위한 데이트 코치. 직업을 잃고 사랑을 얻다.

히치(윌 스미스)는 데이트 신청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소심한 뉴욕 남자들을 위한 데이트 코치다. 그는 연‘애’계의 배트맨처럼 고담시티의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은밀히 고객과 접선하는 전문 선수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히치가 늘어놓는 연애의 법칙들이 가슴에 와닿지는 않는다. “처음 다가가는 순간에는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 “누구에게나 상대를 매혹시킬 기회는 있다”는 당연한 일반론과 “여자들에게는 첫 키스가 앞으로의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공상과학적 조언에 귀기울이는 뉴욕 남자들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나보다. 가장 가엾은 고객은 칠칠치 못한 과체중의 회계사 알버트(케빈 제임스). 이 남자는 심지어 전략적 스토킹을 통해 신분상승을 노리는 듯하다. (슈퍼모델 ‘앰버 발레타’가 연기하는) 상속녀 알레그라를 애인으로 만드려는 이유가 “누구도 그녀의 진심을 알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니, 이런 식으로 육체적 욕망을 정당화, 심지어 순수화시키는 것은 좀 곤란하다.

어쨌거나 히치의 강습은 효력을 발휘하고, 놀랍게도 알버트는 알레그라의 사랑을 얻는다. 그 와중에 히치는 알레그라와 알버트를 쫓는 가십 전문기자 사라(에바 멘데스)와 사랑에 빠진다. 히치는 선수의 본 때를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지만, 50년대 신여성처럼 남자와의 일회성 데이트를 죄악으로 여기는 사라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여기까지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교훈적인 선수의 반성문이 되나 싶더니, 알고 보면 사라 역시 진정한 남성의 손길에 주린 외로운 짝기러기다. 결국 게임에 지는 것은 “여자들을 속인 것이 아니라 만남을 위한 기회만을 창출했을 뿐”이라는 능수능란한 히치의 언변에 넘어가는 사라다.

알버트와 알레그라도, 히치와 사라도, ‘데이트 십계명’ 따위가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에 빠진다. 재주있는 윌 스미스의 코미디 감각이 절정에 도달하기도 전에 “데이트의 공식이란 없다”는 알맹이 없는 교훈극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다. <에버 애프터>와 <스위트 알라바마>의 감독 앤디 테넌트는 뉴요커 10만명의 앙케트를 통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지만, <Mr. 히치…>는 금성도 화성도 아닌, 태양계 바깥의 행성에서 뉴욕으로 불시착한 연애학 개론처럼 보인다. 그 행성에는 신데렐라를 꿈꾸는 중년의 배나온 회계사들만 살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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