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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교도소에서 온 편지

편지 한통을 받았다. 무늬나 색깔이 첨가되지 않은 평범한 편지지 10장에 빽빽이 사연을 적은 편지였다. 이메일과 휴대폰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이런 편지를 받은 것 자체가 신기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자신이 교도소에 있다고 밝혔고 2012년에 출소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이 지면에 썼던 ‘<토요명화>에게 보내는 편지’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이 정말 쓰고 싶었던 글이라고 적었다.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아 반응을 얻었다는 점에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만큼 낯설기도 했다. 그는 <씨네21>을 창간호부터 쭉 사서 봤고 교도소에서도 부모님이 소포로 보내줘서 보고 있다고 했다. 그가 무슨 죄로 그곳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가 처한 환경을 상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전 외화물의 외국배우들 목소리 출연을 맡은 성우들을 맞춰보는 것에도 관심이 있어서 만일 예를 들어 <히트>란 영화를 하는데 주연으로 나오는 로버트 드 니로(양지운 전문)와 알 파치노(배한성 전문)를 담당하는 성우가 내 예견과 틀린 결과를 맞이하게 되면 ‘에이 씨’ 하며 영화를 꺼버리기까지 했답니다. 하하… (중략) 신문으로 <토요명화>의 위기상황을 알게 됐어요. 제가 나올 때가 되면 그땐 양지운, 배한성, 유강진 같은 목소리 배우들의 음성을 듣기 어렵겠죠? 그땐 성우란 직업이 존재하긴 할까요?” 편지 내용으로 보면 그는 대단한 영화광이었다. 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실래요? (중략) 무려 40년간의 영화인생을 걸어오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영화에서 고독, 외로움의 분위기가 풍기지 않은 영화가 있었는지. 그는 절대 결혼한 가장 역할, 자신의 가족과 오순도순 지내는 역할, 사랑을 다룬 로맨틱멜로(그나마 멜로라고 말할 수 있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마저도…) 영화엔 출연도 연출도 맡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략)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가슴의 근육은 30대의 청년 못지않으니 제가 출소할 2012년에도 그의 영화인생은 계속되리라 믿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제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1명입니다. 그의 열렬한 팬으로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아카데미마저 휩씁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설 연휴를 끝내고 아, 다시 지루한 1주일의 마감전쟁을 시작하는구나, 하는 시점에 받은 이 편지는 큰 위안이 됐다. 그는 <씨네21> 10주년을 축하해줬고 <씨네21> 제작진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전했다. 요즘 시나리오 공부를 하고 있다고 전한 그의 편지는 이렇게 맺었다. “전 교도소에서 지방대학과 협력운영 중인 2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호텔전문요리를 배우고 있는데 현실이 이렇다보니 뭐 그저그렇습니다. 부모님 뵙기 민망하여 여기서라도 인격재무장해서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거지요. 이제 1년이 끝나고 올 3월 2학년 과정에 들어갑니다. 혹 종교를 가지고 계시다면 절 위해 잠깐만 기도해주세요. 괜찮으시다면 말이죠. 무엇보다 사랑받는 자보단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말입니다. (중략)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냉소적인 눈과 표정이 그립습니다. 제가 공식출소하든 그보다 일찍 출소의 기회를 가지게 되든 인생과의 전쟁에서 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교훈) 장치는 꼭, 꼭, 꼭 마련해나가야 할 텐데 말이죠.… 힐러리 스왱크가 골든글로브에서처럼 아카데미에서도 상을 받을까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오늘밤은 이 영화광 청년을 위해 기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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