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의 비밀’을 문제풀이하며 슬로 푸드와 웰빙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잡으려는 경향이 뚜렷해질수록, ‘물질적 비만과 정서적 빈혈’로 요약되는 이 시대의 그늘은 엷어지는 게 아니라 짙어지는 것 같다. 여기 이 시대의 대세와는 거리가 먼 음반이 있다. 보헤미안적이지만 부르주아적이지 않고 정서적으로 풍성하지만 마디마다 흉터가 남아 있는 음반, 싱어송라이터 손지연의 <The Egoist>다. ‘한국의 밥 딜런’ 양병집이 제작한 음반 <실화(My Life’s Story)>(2003)로 데뷔한 손지연은 과거형(nostalgia)에 머물거나 가뭇없이 사라져가는 것으로 간주되던 포크(록)에 삶에서 길어올린 진솔한 이야기를 갈무리한 음악으로 작은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15개월 만에 나온 <The Egoist>는 손지연의 첫 자가제작 음반이다. 그녀가 피아노, 신시사이저는 물론 프로듀싱까지 도맡았다는 점과 중간 템포 이상인 곡의 비중이 다소 늘었다는 점은 전작과의 차이점이다. 반면 세션진의 면면이나 평범하고 단순한 노래 제목은 거의 그대로이다. 무엇보다 수록곡들은 전작에 담긴 것과 같은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1집에서 지순하고 맑은 곡들을 선호한 이라면 그리움과 애틋함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린 <영영>과 수채화 같은 소품 <아직도> 등이 귀에 들어올 것이고, “나의 사랑 굶주린 사자처럼 내게 구애해줘”라고 도발적으로 표현한 <절망>을 잊지 못한 이라면 “(난) 미친 년 […] 나를 달래려다 사랑에 빠져버려 정처없이 흘러 공허한 구멍을 드나들어”란 <날>의 발화가 귀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언뜻 대조적인 두 부류의 곡들은 실은 직접적이고 진솔한 표현의 다른 면이며, 순수하면서 관능적인 그녀의 상이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벨 앤드 세바스천 풍의 <이야기>, 프로그레시브 록 분위기가 살짝 묻어나는 <하늘>, 현경과 영애, 고은희·이정란 같은 옛 여성 듀엣을 떠올리게 하는 <성탄> 등 대부분의 수록곡들은 다들 낡았다고 생각하는 음악 양식을 ‘오늘에 되살린’ 것이다. 물론 쿨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이 시대에 이 음반이 ‘틈새’ 이상의 파장을 일으키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에바 캐시디(Eva Cassidy)처럼 ‘천생 가수’인 손지연의 노래들은 잊고 있던 ‘삶의 노래, 진실의 노래’란 명제를 다시 한번 환기시켜준다. ‘많은 사람에게’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