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거대한 농담 같은 소설이다. 파렴치에 가까운 상상력을 가진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구두가게가 너무 많아 파산한 행성이 있고, 살아남은 몇몇 주민들은 다시는 신발을 신고 싶지 않아서 새가 되었다는 따위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이것을 SF라고 부를 수나 있는 걸까? 그러나 <은하수를…>은 이상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우주를 지배하는 존재와 빅뱅과 지구의 탄생이 술 한잔 안줏거리로 전락하는 쾌감. 그러니까 인간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그 사실이 서글프다기보다 재미있기만 하다.
아서 덴트는 지구가 초공간 우회로 건설 때문에 파괴되기 몇분 전 친구 포드 프리펙터와 함께 지나가던 우주선에 올라탄다. 포드는 <은하수를…>의 조사원이었지만, 우주선이 지나가지 않아, 산간벽지 지구에서 15년 동안 살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무렵 은하계 대통령 자포드 비블브락스는 그가 데려온 지구인 여자 트릴리언과 함께 최신형 우주선 순수한 마음호를 훔친다. 아주 우연하게도 만나게 된 네 사람은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모험을 계속한다. 그 와중에 아서는 지구가 100만년 전 우주인들이 만든 유기체형 컴퓨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78년 라디오 드라마로 시작된 <은하수를…>은 놀라운 인기를 끌어 몇 가지 판본을 생산해내며 올해 영화로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30년 가까이 묵은 셈이지만, 아직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애덤스는 인류의 미래를 근심하거나 미래를 통해 현재를 비판하는 사색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써내린 듯한 이 이야기들은 범접하기 힘들 만큼 뻔뻔스럽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과장법도 5조년 우주의 역사를 하룻밤 이벤트로 무너뜨리는 애덤스의 무례한 태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과학도 구성도 전무한 SF소설. <은하수를…>은 제목부터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상관하려 하지도 않고, 읽는 이도 상관하지 않게 만드는 유쾌한 장난이다. 이번에 출판된 시리즈는 애덤스가 직접 쓴 서문 <안내서에 대한 안내>부터 5권 <대체로 무해함>에 이르는 완결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