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제 55회 베를린영화제 중간결산 [4] - 신재인 감독의 베를린 탐방기
2005-02-23

나는 내가 베를린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나는 지난밤에 너의 영화를 보았다. 그것은 힘이 셌고 재미가 있었고 나는 흥분했다. 나는 너의 영화를 베를린영화제에 초청하고 싶다. 그것은 2월10일에 발생할 것이다.” 독일인 프로그래머가 부산영화제 마지막 날 내게 보내온 메일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좀 으스스했다(자동번역프로그램을 통해 한글로 번역해서 보낸 것. 내 시나리오도 자동번역기에 넣어 좀 공포스럽게 할 수 없을까?).

<신성일의 행방불명>이 베를린영화제에 가게 됐다고 자랑하자 최모 선배는 물었다. “베를린인디영화제?” 강모 후배는 물었다. “베를린단편영화제요?” “베를린영화제, 부산영화제보다 후지대.” 김모는 말했다.

이들이 이러는 걸 보면 대단한 영화제인 게 분명해. 느낌이 좋은 게 왠지 가서 상을 받을 거 같다. 그럼 시상식 단상에 올라가 트로피를 받고 소감을 밝히는 거야. “이 순간을 고대했습니다. (중략) 수상거부를 하면 재밌겠다고 심심할 때 가끔 생각했거든요. 제게 상을 주시니 영화에 대한 안목이 있으신 게 분명하여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스러우나 위원 제분께서 제게 상을 주실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네요. (트로피를 돌려주며) 곰돌이가 예쁘긴 하네요.”

“포럼? 비경쟁 부문이고 아무 영화나 다 가더라야.” 오모 선배는 말했다. 실망하고 있는데 베를린쪽에서는 자기들 영화제에 오려면 로테르담영화제 초청을 거절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네.”

초청된 건 좋지만 여행하는 건 싫었다. 내 집이 너무 좋은걸. 영화라면 볼 만하다. 그런데 영화를 베를린까지 가서 봐야 하나? 거기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는 어차피 나랑 인연이 없는 걸로 생각하면 안 될까? 말하자면 나는 깡시골에서 자기 마을이 이 세상이라고 믿으며 고집스럽게 만족스러워하는 촌늙은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사소한 차이로 인해 그 고집이 좀 가식적이긴 하나)인데 우리 아버지는 자신보다 더 늙은 딸에게 유로화를 건네며 유럽 문화를 꼭 보고 오라고 하셨다. “걔네들은 소매치기 문화도 잘 보존해놨다고.”

2월10일

부산영화제 가방이 훨씬 예쁘다

아버지가 주신 막대한 유로화를 파리에서 6일간 불란서 스테이크를 먹는 데 탕진하고 매우 가난해져서 베를린에 도착. 이미 파리인들의 야만성(물 강매하기, 대소변 보는 값 매기기, 담배 아무 데서나 피우기, 신호등을 가로등쯤으로 여기기, 그리고 훔쳐온 물건 전시하기)에 익숙해진 터라 베를린에서는 더 놀랄 것도 없겠지 싶어 안심이 된다. 베를린은 대전 정도의 도시로 보인다. 2차대전 전의 베를린 사진을 보니 파리에 비해 이 도시가 얼마나 심하게 폭격당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베를린은 고풍스런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모던하고 지나치게 꾸미지 않은 외양을 얻었다.

사무실에 가서 아이디카드를 받으며 기대하던 베를린영화제 가방을 받았다. 두둥. 근데 생긴 게 휴대용 린나이가스레인지 커버와 같고 박음질은 부실하며 크기는 더 크다. 이걸 어디에 쓰란 말이냐? 레인지 커버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부산영화제 가방이 생각났다(이 이후 경험한 바, 대부분의 면에서 베를린영화제가 부산영화제보다 후졌다는 것을 미리 말해둡니다. 김모야, 정말 그렇더라).

키아누 리브스가 왔나보다. 극장 앞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2월11일

브라질산 웰메이드 영화에 기죽다

<브라질레이리노>

영화? 별거 아냐. 그냥 만드는 게 재밌어서 만든다, 고 생각했었다. 건방진 것.

영화가 별거 아닌 게 결코 아님을 내게 깨우쳐준 것은 파리의 미술관들이었다. 평소 미술에 꽤나 흥미를 갖고 있던 터에 6일간의 파리미술품 알현 일정은 사실 베를린영화제에 가는 것보다 더 나를 흥분시켰었다. 가서 보니 작품들은 기대보다 더 훌륭했다. 그런데 매일매일이 왠지 허망했다. 모나리자 앞에서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지만 그게 가수 마돈나를 직접 보고 눈물을 떨어뜨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이냐. 허망. 에펠탑에 가면 뛰어내릴 수 있는지를 물었다.

미술 작품 관람, 도시의 건축물 구경- 이 모든 sightseeing은 소설이나 영화, 텔레비젼 쇼가 주는 체험과는 다른 것 같다. 어폐가 있지만 픽션은 sightliving. 가짜로라도 뭔가 살게 해준다(그림도 열심히 들여다보면 살게 될지 모르지만. 그런 공포영화도 있었지).

그리고 무인도에 갇혀 평생 살아야 한다면 모나리자보다 삼류 소설을 들고 가지 않겠나.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주여, 제발 제게 기막힌 영화를 보여주소서. 단, 제가 영화감독 그만둔 다음에요(몇년 전 나는 부산영화제에서 기가 막힌 영화들을 한 다스로 보고 고시공부에 매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처연히 밤길을 헤맸었다. 그래서 지난해 부산영화제 때는 영화를 일절 보지 않고 부산의 호텔구경만 했었지).

처음 본 작품. 작품에 대한 정보없이 아무 거나 보자고 들어갔는데 운수가 나쁘다. 완벽한 영화였다. 브라질에서 할리우드 자본과 손잡고 만든 포르투갈어 영화인데 할리우드의 최상급 영화에 해당하는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이런 말이 있는지 불안함)를 제공한다. 브라질풍의 프랭크 카프라 코미디인데 훨씬 나은 카프라다. 부조리, 이유없음에 대한 감수성(왜 너는 부자인데 쟤는 가난하냐?)을 오락적으로 푼 것이 신선하다. 감독은 분명 할리우드로 스카우트될 것이고, 각본가는 얼른 우리나라에서 스카우트하라!

어쨌든 아쉽게도 지루한 부분이 너무 없어 걸작은 못 되겠다(오락영화의 걸작들도 보면 다 지루한 부분이 있더라).

2월12일

어험, 한국 대표가 된 기분이네

<천사의 추락>

<사랑없는 일년>

폭탄 두개를 연이어 만나다.

터키의 가난한 그리스인이 나오는 영화가 먼저. 영화에서 죄다 팔아도 이건 팔지 않았으면 하는 게 (별로 없지만) 가끔은 있지 않나? 예컨대 가난과 터키의 풍광. 마지막 십분을 남겨두고 대피.

그 다음 터진 것은 여성감독이 만든 게이들의 SM영화. 포스터도 야하고 홍보도 열심이고 과연 관객으로 인산인해다(이중 많은 수가 중간에 대피함). 에이즈에 걸린! 마조히스트! 게이!(이 세 구절이 이 영화의 모든 것임)의 일상을 죽 보여주다가 사람들이 졸지 않도록 사도마조히즘 포르노로 가끔씩 배려함(성기고문, 항문에 장난치기- 상당히 세다). 포르노는 성공인데 일상 부분은 파탄이다. 그러나 “아주우” 약간 부러웠던 것도 사실. 이 여인, 촬영 기간의 반은 사내들 벗겨놓고 찍었을 것이다. 포르노 때문에 나는 끝끝내 대피 못함. 이 영화, 게이를 혐오하게 하는 데 효과 만빵이니 멜 깁슨은 어서 수입하라!

저녁, <신성일…>의 첫 상영이 있었다.

내 영화는 포스터도 붙어 있지 않고(만들었는데 어딨는지 모르겠다) 모든 영화를 소개하는 공식 브로슈어에 난 몇줄을 빼면 아무런 사전정보도 주지 않는, 코레아의 비디오영화다. 누가 오겠나 싶었지만 미스 월드 한국 대표가 된 심정으로 독일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30분간 독일어 공부를 하다가 극장에 갔다. 생각보다 관객이 제법 들었다. 매진은 아니었지만 극장이 상당히 커서 아마 <신성일…>이 가장 많은 관객을 만나는 날이었을 듯(한국 동포들이 독일 친구들을 다 데려온 거 같다. 장하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내가 다른 영화에서 그랬듯- 상영 중에 대피하다(내가 출구에서 한명 한명 얼굴을 확인함. 다행히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신성일…>Q&A시간

관객과의 대화시간. 무대에 올라 독일어를 몇 마디 하니 관객이 좀 놀란다. 참, 인사말 갖고 감탄하긴. 그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은 듯하여 좀 놀랐다.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독일 내지 유럽 관객이 한국과 한국영화에 대해 무지하거나 오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됨. 이들도 안다. 요즘 독일 뉴스를 타고 있는 북한의 핵위협(연예인들 가십 나오는 독일 신문에도 2면에 커다랗게 김정일 사진 나옴), 이럴 때 따라나오는 북한 군인들의 독특한 행군 모습, 그리고 윤이상, 송두율에 대한 남코레아의 처사. 한 독일 관객은 벌떡 일어나더니 한국영화가 대부분 정치적이라고 말하며 내 영화에서 한국 정권에 대한 모종의 반작용을 찾아보려고 한다(아니, 이미 찾았다).

Q&A가 끝나자 한국인 동포처녀와 총각이 내게 사인을 부탁한다(그들은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 그러면서 내 영화를 보고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그들이 자부심 느낄 일이 얼마나 없었으면 내 영화로 그런 걸 느꼈을까? 얘들아, 한국엔 <신성일…>보다 좋은 영화 많아. 그리고 한국, 괜찮은 나라야(그런데 한국, 그동안 뭐 했어요?)

베를린 리포트: (베를린에 와보니) 영화는 예술이고 사업이기 전에 외교인 것 같습니다.

2월13일

역시 정치적인 영화제야

<학살>

내 영화가 웰메이드가 아니란 것에 대해 괴로워하다 내가 나를 위로했다. “저예산으로 웰메이드를 만들려면 등장인물도 적고 로케이션도 평범해야 해. 스토리라인도 단순하면 더 좋고. 그럼 콘티도 단순해지고 감독이 중요한 데 집중할 수 있고. 니 얘기는 저예산으로 웰메이드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맞아, 맞아, 나도 웰메이드할 수 있어. 주먹을 불끈 쥔다.)

“좋아, 앞으로 다섯명만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겠어.” 내가 말하자

“근데 니 스토리 중에 <신성일…>이 그나마 사람 적게 나오는 스토리 아냐? 다 100명 넘게 나오는 얘기라서 신성일이 제일 찍기 쉽다고 그거 찍은 거 아냐?”

제3의 내 목소리, “방금 그 말도 변명이란 거 알지?” “그래, 알았어. 나 바보야. 웰메이드 못 해, 됐어?” 성질을 부린다. 티격태격하며 방구석에서 뒹굴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린) 영화는 내가 관찰한 바로는 놀랍게도 한 다큐였다. <학살>이란 제목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한 유대인 몇명의 인터뷰를 담은 영화. 베를린영화제는 섹스와 더불어 유독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 독일인 관객도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이 영화는 독일인들에게 학살당했던 유대인들이 이번에는 자기들이 학살자가 된 현재를 다루고 있어 관심을 증폭시킨 듯하다. 큰 극장인데도 통로, 입구까지도 사람으로 꽉 차서 나는 입장을 거절당함. 한 무더기의 관객이 들여보내 달라고 항의하며 30여분 동안 문 밖에 서 있었다. 나도 달리 할 일도 없고 하여 같이 서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절실히 보고 싶어졌지만, 그러나 다음번 상영도 나는 볼 수가 없다.

2월14일

고3처럼 영화공부하다

파리에서 미술품에 싸여 있을 때는 영화를 보고 싶어 죽겠더니 베를린에서 영화가 범람하자 영화보기가 점점 멘탈 무산소운동, 그러니까 고역이 되어간다. 그럴수록 나는 하루에 몇편을 보는가, 하루에 영화보지 않는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따위에 골몰하고, 더 주목할 건 이젠 폭탄을 만나도 대피하지 않는다는 것. 너무 세심하여 지리멸렬해 보여도, 너무 길어서 잠이 쏟아져도 수험생처럼 잠을 쫓으며 견딘다. 그러다 한밤에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 딱 고3 수험생의 만족감과 허탈함이 교차한다(게다가 오는 길에 자주 비나 눈이 내리며 적당한 무드를 조성).

그러니 내가 어떤 영화를 그 내용도 모르고 단지 255분짜리 다큐라는 이유만으로 보려 하는 작금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내 정신의 근육질을 위해. 이건 정말로 헬스다.

2월15일

아시안 걸, 알고보면 무섭단다

아시아 여성들이 항상 강간당하는 것은 아니며 남자들에게 늘 맞고 사는 것도 아니고 아시안 걸들도 꽤 당당하게 살고 있단 걸 이곳 사람들도 알긴 알겠지? 베를린만 그런지 모르지만 초청된 아시아영화들 속의 남과 여를 보다보면 음, 좀 그렇다. 아시아 남자들은 여자랑 소곤소곤 하다가도 여자가 좋아지면 왜 갑자기 덮치나? 그리고 화간인데도 여자들은 왜 그리 아파하고 왜 그게 또 좋나?

이건 서양인이 원하는 바일 것 같다, 아마도. 자기들 영화에서 어쩔 수 없이 세워야 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신물이 날 때 아시아의 강간과 폭력이, 노골적이라 위선없는 욕망의 순수한 표현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나아가 유럽영화제에 초청되는 아시아영화들에 어떤 특성이 있고(이 특성이 없어도 초청될 수 있지만 이걸 갖추면 상당히 유리함) 따라서 초청작들이 실제 아시아영화의 다양성에 비하면 너무 편협한 것이라 해도 그건 당연한 것일 거다. 이건 유럽영화제이고 유럽은 유럽에 없는 걸 가져가겠지(유럽에 있지만 우리가 더 잘 만드는 것을 가져가게 할 정도가 되면 부산영화제가 베를린을 대체하지 않을까?). 당연하지 않은 것은 유럽영화제에서 국제표준의 별점을 보는 것일 거다. 정말 베를린영화제는 베를린에서 열리는 영화제일 뿐이다. 칸은 칸에서.

근데 내 영화에 있고 서양영화에 없는 것은 뭘까? 초코파이가 떠오른다.

초청된 아시아영화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특성 하나. 최신 프린트에 웬 먼지와 스크래치가 그리도 많단 말이냐? 저예산필름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을 꽤 들여 아주 잘 만든 홍콩영화 <교자>(만두)조차 티끌이 상당히 보인다. 믹싱도 완전하지 않다(폴리, 효과음 등이 자신의 태생을 속이지 못함). 더 가난한 나라 영화들도 이러지 않는데, 안타깝다(<신성일…>은 다행히 아직 비디오 상태라 티끌은 없다).

2월16일

잘 있거라, 베를린~

집에 간다. 취스, 베를린.

해외여행하고 싶어하는 시어머니께 전화. “어머니, 나와봤더니 별거 아니네요. 다 후지고요….” 서울이, 인구 1천만이 그립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글: 신재인/ 감독·<신성일의 행방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