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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영혼을 가진 두 남자 이야기 [3]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김도훈 2005-02-22

<에비에이터>로 제자리 찾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날아라! 천재 소년

하워드 휴스는 엄청난 부자였으며 할리우드 톱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던 미남에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비행기를 허공에 띄우려 했던 몽상가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상할 정도로 하워드 휴스와 닮았다. 10대 때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슈퍼모델과 같이 사는 미남에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영화에 출연했던 슈퍼스타와 하워드 휴스는 사춘기 소년처럼 불안정한 존재다. <에비에이터>는 그런 불안한 미숙함을 이용하는 영화다. 마틴 스코시즈는 디카프리오의 왜소한 가슴과 아이처럼 여린 뺨에 조명을 드리우며 소년의 모습을 강조한다. 8년 전 디카프리오가 하워드 휴스의 전기에 사로잡혔을 때, 그는 한번도 나락으로 빠져본 적 없는 영재배우이자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는 조숙한 아이였다. 시간이 흐르고 <타이타닉>의 거품이 가라앉자 디카프리오는 소년의 얼굴에 갇혀 지지부진한 세월을 보냈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세상의 모든 꿈들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워드 휴스는 최후의 나날들을 매우 외롭게 마감했다. 내가 들어본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가장 슬픈 존재다.” 그가 명성의 뒤안길에 있는 외로움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에비에이터>는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어떻게 디카프리오는 소년으로 머무르길 그만두고 성인의 걱정을 시작했던 것일까.

조숙한 영재, 날것의 생생함

아름다운 육체 속에 깊은 재능을 숨긴 남자배우들이 있다. 많은 경우, 이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커리어를 마치고 만다.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리버 피닉스는 알코올과 약물중독으로 이른 생을 마감했고, 제임스 딘은 길 위에서 죽었다. 미모와 능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은 서커스처럼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은 조니 뎁처럼 은둔하는 것이다. 스타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길버트 그레이프>가 갓 세상에 나왔을 때,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같은 미래를 가진 배우라고 말했다. 지금은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그때만 해도 디카프리오는 아름다운 얼굴가죽 뒤에 성격파 배우를 숨겨놓은 소년이었다. <디스 보이스 라이프>(1993)에서 그는 로버트 드 니로의 메소드 연기에 조금도 짓눌리지 않는 당돌함을 보여준다. 당시의 인터뷰들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명석한 소년이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드 니로에게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다가는 그의 연기에 흡수되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해서 나의 잠재력을 지나치게 맹신하지는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모든 것이 결국 내 어깨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그런 자신감은 절정을 맞이한다. 정신지체장애를 앓는 소년 ‘어니’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순결한 표정 뒤에 숨겨놓은 감정이 바스라질 듯 연약해서 보는 이를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디카프리오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어니’를 창조했다. 역할 속에 자신을 완벽하게 투영시키기보다는 자신의 자아 속에 역할을 맞추어 담았다. 거칠지만 생생했다. <디스 보이스 라이프>와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그런 장점이 더욱 도드라졌던 이유는, 그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조심스럽게 커가면서 생긴 균열 때문일 것이다. 균열 사이로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힘이 빠져나오는 순간에 디카프리오는 조숙한 영재처럼 빛이 났다.

<타이타닉>과 함께 침몰 위기에 놓이다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내 몸은 성인의 몸이 되어가는 중이고 거기에 맞추어 성인 역할을 해야만 한다”며 체할 것처럼 급하게 토로하던 디카프리오는 조숙한 소년이었지만 미숙한 어른이었다. <토탈 이클립스>나 <바스켓볼 다이어리>에서 그는 젊음의 고통을 표현하는 순간에는 생생해지지만 어른스런 깨달음을 얻어야 할 순간에는 비틀거린다. 그러는 동안 디카프리오는 지나치게 아름다워졌고, <로미오와 줄리엣>과 <타이타닉>이 동시에 찾아왔다. 감당할 수 있는 배포를 얻기도 전에 무서울 정도로 거대한 스타덤을 등에 업어버린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아프가니스탄의 이발사 22명이 <타이타닉>의 디카프리오 스타일로 고객의 머리를 다듬었다는 이유로 탈레반 정부에 구속당했다(심지어 디카프리오는 자유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잡지와 방송은 그의 얼굴로 도배되었다. <타이타닉>은 레오를 세상의 왕으로 만들었고, 동시에 그를 망가뜨렸다. “그건 내 의도가 아니었다. 그 누구도 영화가 그같은 흥행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었고, 나는 내 커리어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예언할 수 없었다. <타이타닉> 이후에 나는 완전히 공허한 상태였다.” 우디 앨런의 <셀러브리티>에서 그는 마약과 술에 절어서 호텔방을 박살내는 기고만장한 할리우드 스타를 연기하며 자신의 처지를 패러디했고, 뭔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아이언 마스크>와 <비치>에 출연했다. 사람들은 어느 것도 반기지 않았다. 그를 사랑하던 세상이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등을 돌렸다. 타개책으로 <아메리칸 사이코>를 원했으나 메리 해론 감독은 “<타이타닉>의 애송이에게 이 역할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감독직을 내놓았고, 미디어는 “십대들의 우상인 그가 사이코 살인마 역을 맡는 것은 나쁜 영향을 끼친다”며 떠들어댔다. 모두가 <타이타닉>만을 기억하고 있었고 <길버트 그레이프>와 <디스 보이스 라이프>의 재능있는 소년은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였다.

소년, 하워드 휴스를 만나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타이타닉>

갑작스런 명성에 함몰되어가던 이때의 디카프리오를 영화로 만들었다면, 그것은 몹시도 하워드 휴스의 일대기와 닮아 있었을 것이다.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하지도 않고 뚝 끊어버리는 <에비에이터>처럼, 갑작스레 크레딧이 올라가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맹목적으로 칭찬하는 순간, 당신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때까지 성취해온 것들을 모조리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소년은 길을 알려줄 아버지가 필요했다. 디카프리오처럼 히피 부모 밑에서 자란 할리우드의 젊은 스타들(위노나 라이더, 리버 피닉스)은 어른의 나이가 되는 순간 갑자기 성장을 멈춘다. 부재했던 권위가 갑자기 필요해지는 아이러니한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디카프리오가 선택한 아버지들은 스코시즈와 스필버그였다. <갱스 오브 뉴욕>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을 파괴하는 소년의 성장기였고,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자신을 다그쳐주지 않는 아버지를 떠나 새로운 아버지를 찾는 소년의 이야기였다. 스필버그는 디카프리오와의 작업을 ‘부모 역할로서의 감독’이라고 일컫는다. “당신이 아이를 잘 못 가르칠 때, 아이들은 그에 맞설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와우!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하고 말이다.” 스코시즈는 지각을 일삼는 디카프리오를 스탭들 앞에서 무섭게 혼냈다. 두 아버지를 통해 디카프리오는 성장했다. 느긋하게 2년을 더 기다린 그는 8년 동안 준비해왔던 하워드 휴스의 이야기를 스코시즈에게 건넸다.

<에비에이터>로 오스카 후보에 거명되고 호들갑스러운 찬사를 받아내는 지금에 와서도 <타이타닉>의 유령은 구천을 헤매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인터뷰에서 “왜 당신은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 한번도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는가” 하고 다그치며 <에비에이터>에서의 디카프리오가 테크닉에서는 우수하지만 감정적인 연기에서는 여전히 서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디언>의 지적에 대해서는 약간의 변명이 필요하다. <에비에이터>는 한 시대를 스쳐가며 몽상과 망상에 시달렸던 남자의 겉모습을 화려하게 스틸북처럼 넘겨가는 영화다. 디카프리오는 휴스의 남겨진 기록들에서 기이한 행동양식을 수집해 과장된 제스처로 (재현이 아니라) 창조해낸다. “아기 얼굴(Babyface)과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목소리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빌리지 보이스>의 지적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만, 디카프리오는 하워드 휴스의 강박적인 자기몰두와 연약함을 시각적으로 되살리기 위한 스코시즈의 도구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그는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는 강박장애와 결벽증을 연기하기 위해 세트 밖에서도 의식적으로 카펫의 결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손으로 계속해서 쓸어댔고, 물건들을 지겹도록 반복적으로 두들겨대기도 했다고 한다. 그건 마치 메소드 연기에의 도전처럼 보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즐기는 디카프리오는 메소드 연기를 제한된 부분(긴장된 순간에 튀어나오는 하워드 휴스의 작은 버릇들)에서만 조금씩 활용한다. 조심스럽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아이처럼 말이다. “나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아니다. 내가 24시간 내내 그 캐릭터로 살아야만 한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는 대니얼보다는 제한된 집중력을 가지고 있다.”

재능있는 소년, 삶은 지금부터

<디스 보이스 라이프>

<로미오와 줄리엣>

스필버그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찍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순수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레오는 아직 그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나는 종종 그에게 말했다. 네 안의 작은 소년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라. 그런 상처입기 쉬운 연약한 네 속의 소년이 너를 더 큰 배우로 성장시킬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스코시즈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단호하게 “디카프리오는 더이상 소년이 아니다. 그는 남자다”라고 강조한다. <에비에이터>의 창조자는 디카프리오였다. 지난 8년 동안 15번 수정되어 나온 각본을 읽고, 마이클 만과 스코시즈 등의 감독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연출을 제의하며 준비한 영화다. “그의 DNA가 각본의 모든 곳에 깃들어 있다”는 각본가 존 로건의 말처럼, 디카프리오는 주어지는 시시한 역할들을 걷어차고, 스스로의 명성을 이용해서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해 나가는 남자로 성장했다. 하워드 휴스와 디카프리오는 여기서부터 달라진다. “그의 삶은 어떤 남자라도 경외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코 내 자신을 그런 식의 꿈속에 집어넣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말하는 디카프리오는 여전히 나르시시즘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으로 제국을 건설한 하워드 휴스의 어린애 같은 야심은 없다. “나는 명성이라는 것에 스스로 길들여진 프로다. 나는 18살부터 그런 것들과 싸워왔다. 절대로 명성이라는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12년 전 <디스 보이스 라이프>를 찍으면서 디카프리오는 겁도 없이 로버트 드 니로에게 건방진 혈기를 쏟아냈다. 대본연습을 하다가는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드 니로는 오히려 흥미를 느꼈고 속깊은 충고를 건네주었다. “대본연습을 할 때, 나는 디카프리오라는 소년에게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에게 말해주었다. ‘꼬맹아, 만약에 네가 내 충고를 원한다면 이걸 꼭 명심해라.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앞으로도 계속 이용하라는 말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서른살의 나이로 자신과 똑 닮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나서야 위대한 배우의 충고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성숙한 소년에서 미숙하나마 어른이 된 것이다. ‘이 소년의 삶’이 과거의 환영을 딛고 넘어서는 순간은 12년 만에 찾아왔다.

“그는 낭만적인 사랑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

주변인들이 말하는 디카프리오

클레어 데인즈(<로미오와 줄리엣> 배우) 우리는 영화를 찍으면서 꽤 친해졌다. 하지만 로맨틱한 사이는 아니었다. 디카프리오는 낭만적인 사랑이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다.

바즈 루어만(<로미오와 줄리엣> 감독) 이집트에 휴가차 갔을 때 벽에 붙은 두장의 포스터를 보았다. 하나는 마이클 잭슨이었고 다른 하나는 디카프리오였다. 그는 이제 새로운 세대의 로미오가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타이타닉>에 참여했던 단역배우 디카프리오는 완벽한 무비스타다.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거나 그런 것 때문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스크린 밖에 있을 때나 스크린 속에서 연기할 때나 똑같아 보인다.

케이트 윈슬럿(<타이타닉> 배우) 디카프리오는 미디어들이 광분할 만큼 자기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넌 정말 끔찍할 정도로 멋져. 그리고 넌 완전히 개자식이야. 어떻게 두 시간밖에 못 잤으면서 그렇게 연기할 수 있지?”

스티븐 스필버그(<캐치 미 이프 유 캔> 감독)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역할에 지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사실 그건 매우 좋은 일이다. 광내고 다듬어진 연기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디카프리오를 화면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갱스 오브 뉴욕> 배우) 디카프리오는 꽉 조여 있지는 않은 배우다. 그의 연기는 지나치게 심사숙고하고 재단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 없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순간들을 만들어 낸다.

마틴 스코시즈(<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감독) 디카프리오는 나로 하여금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일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서는 70년대의 배우들에게서나 봄직한 에너지가 있다. 이런 식으로 특정 배우와의 커넥션을 발견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드문 일이다. 디카프리오는 내가 서너개의 장면에서만이라도 건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감정들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는 같은 장면의 촬영이 계속 반복되어도 그런 감정을 지속시킬 줄 안다. 최근의 할리우드를 반영하는 작품만 골라서 출연하는 요즘의 젊은 배우들과는 매우 다르다.

하비 웨인스타인(<갱스 오브 뉴욕>의 제작자) 디카프리오는 고전적인 영화 만들기를 즐긴다. 그는 스코시즈에 의해 다시 불이 붙은 연기자이며, 로버트 드 니로를 존경하듯이 스코시즈를 존경한다. 동시에 그는 스코시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당신이 스코시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최소한 20개 이상의 무성영화를 봐두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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