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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영혼을 가진 두 남자 이야기 [2] - 조니 뎁
김현정 2005-02-22

<가위손>에서 <네버랜드를 찾아서>까지, 조니 뎁을 찾아서

달의 뒷편에서 걸어온 피터팬

마크 포스터는 <피터팬>의 작가 J. M. 배리가 다섯 번째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데이비스가의 네 형제를 사랑했던 배리는 그들로부터 성장을 거부한 소년 피터팬을 떠올렸지만, 데이비스 형제 중 하나인 피터가 말하듯, 그 자신이 열두살 즈음에 머무른 피터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네명의 소년 곁에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어른이 되지 못한 다섯 번째 아이 제임스 매튜 배리. 포스터는 배리의 서글픈 모험담인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위해 조니 뎁 말고 어떤 배우도 떠올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성숙한 육체 안에서 맑은 영혼을 찾아야 했던 그는 “조니 뎁의 내부에는 누구도 손대지 못한 어린아이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었다. 아이처럼 천진하면서도 세상의 무정한 이치를 알고 있는 듯한 조니 뎁은 포스터가 믿은 것처럼 희곡 대신 연기를 선택한 J. M. 배리의 분신일지도 모르겠다. 머뭇거리면서 아내에게 산책을 청하다가 거절당하는, 매사에 서툰 배리, 그리고 데이비스가 소년들에게 요정의 가루를 뿌려 네버랜드로 이끄는 마법사 배리. 서로를 배척하면서도 공존해야만 하는 두개의 자아. 조니 뎁은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어서 홀로 있을 수밖에 없었던 배리를 담담한 몸짓으로 스크린에 불러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어느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혼자만의 영토 안에 물러서서 먼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배리가 데이비스가의 미망인인 실비아와 그녀의 네 아들과 맺은 인연을 픽션으로 각색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배리는 텅 빈 공원 잔디밭 위에 곰이 춤을 추는 서커스 무대를 창조하고, 평범한 수풀로 뛰어들어 폭풍우에 흔들리는 선상의 전투를 펼쳐 보인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무엇이든 볼 수 있어”라면서. 사랑한 이들로부터 거절당했던 배리는 그처럼 불빛 속의 곡예사나 거친 해적이 되는 꿈을 꾸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열두살 된 아들이 죽은 뒤 동생인 배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선 죽은 아이만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살아 있다는 축복을 죄책감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꼬마가 도대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조니 뎁은 배리처럼 내성을 키우기도 전에 상처를 받았고 그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도록 자신을 가장하면서 안식을 구했다. “<에드 우드>(1994)는 산들바람을 맞듯 편안하게 찍은 영화였다. 벨라 루고시 역의 마틴 랜도와 나는 온갖 이상한 짓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 자신일 필요가 없을 때, 나는 안전하게 집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끔은 마스크처럼 느껴지는 음영이 분명한 외모와 그 단단한 껍질 아래에서도 미세한 파장으로 새어나오는 슬픔. 조니 뎁은 울고 있는 꼬마를 마음속에 가두어둔 채 나이를 먹었지만, 웅크린 꼬마는 사라지지 않았고, 조니 뎁의 연기 어딘가에 머물러왔다.

눈으로 드러내는 선천적인 슬픔

조니 뎁은 어느 인터뷰에서 “켄터키에서 태어나 미국 남부의 거의 모든 지역을 떠돌며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낯선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일조차 그만두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어릴 적에 고향 켄터키를 떠나 플로리다에 정착해 살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지우고 스스로의 기억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이혼한 부모의 막내였던 조니 뎁은 매주 아버지의 사무실에 가서 양육비를 받아와 인디언 피가 섞인 어머니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그렇게 자라난 조니 뎁은 자신을 아이돌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TV시리즈 <21 점프 스트리트>(1987)를 자진해서 떠나 기묘한 판타지영화 <가위손>(1990)으로 옮겨갔다.

스무살쯤으로 추정되는 에드워드는 무(無)에서 생산된 인조인간이기 때문에 오염될 기억조차 없는 백지나 마찬가지다. 이 세상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미완성으로 남아야 하는 에드워드. 조니 뎁은 새하얀 분장으로 뚜렷한 골격을 메우고선 무엇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텅 빈 눈동자만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만이 나이를 먹는다. 마을에서 쫓겨나 성 안에 유폐된 에드워드는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스무살 언저리 소년처럼 보이지만, 연인을 새겨둔 눈동자는, 너무 오래되어 돌멩이처럼 뭉쳐진 슬픔을 내비친다. 그때 조니 뎁은 스물일곱살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볼펜 세일즈맨으로 일했던 흔하고 흔한 고난만으로는 그런 감정을 눈 안에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버스터 키튼을 좋아하는 건 비슷한 영혼을 타고난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찰리 채플린을 좋아하지만 버스터 키튼은 다르다. 키튼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얼굴로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 거의 초현실적이다.”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아도 무한의 표정을 품은 무성영화 배우. 조니 뎁은 <베니와 준>에서 숭배하는 키튼에게 다가가는 동시에 <가위손>의 팀 버튼과 주고받았던 공명, “사람들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아니라고 규정하는지, 아웃사이더로 자란 느낌, 괴짜라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베니와 준>(1993)의 샘은 배리와 닮은 면이 많은 청년이다. 빌린 잠옷을 입고 순진하게 빈 욕조 안에 앉아 있던 샘은 지팡이와 모자로 무장하면 마법사가 되고 치료사가 된다. 그네에 앉아 하늘을 날고, 다리미로 치즈 토스트를 구워내고, 마음을 닫은 소녀를 세상으로 인도한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곡예와 마임을 배운 조니 뎁은 버스터 키튼처럼 표정이 없는데도 연민과 이해와 애정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나는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 몸짓. “배우의 연기에는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이 스며들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연기가 아니라 거짓말이다”라고 믿는 조니 뎁은 소음을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고 악을 써대는 준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이 극장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거나 무대로 뛰어나가는 괴상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게 정상이라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스타덤에 오른 조니 뎁은 할리우드 힐스 꼭대기에 있는, 안개가 많은 날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집을 사서 혼자 살았다. “나는 작은 원 안에 서 있다. 그 안에 들어와도 좋다. 하지만 헛수작을 하려고 한다면 당장 쫓겨날 거다.”

그리고 십년이 지나서 조니 뎁은 프랑스 남부에 정착해 사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직도 작은 원을 고집하고 있다. 그는 배우들이 꿈꾸는 아카데미조차 원하지 않는다. 조니 뎁은 말론 브랜도가 인터뷰를 기피한다는 기사를 읽고 칸영화제에 가서 똑같이 행동했었다. <네버랜드를 찾아서>가 아카데미 후보로 거론되자 또다시 자신의 우상을 떠올린 것일까. “나는 아카데미 후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2003)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하지 못했을 때 나는 안도하면서 숀 펜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가 미국을 “내 아이들이 잠깐 살피고 내버리기를 원하는, 고장난 장난감” 정도로 여긴다는 사실도 유명하다. 세상은 그를 박대하고 그 또한 세상을 박대한다. 조니 뎁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만을 드러냈다면 추방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악마, 라고 부르는 조니 뎁은 연기를 통해 그 악마를 마음 밖으로 내보내왔다.

상실의 배우, 보헤미안의 영혼

<가위손>

<프롬 헬>

그러나 악마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조니 뎁은 격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아편에 취해 연기처럼 희미해져가는 <프롬 헬>(2001)의 에벌린, 다시는 보지 못할 연인을 껴안고 그녀가 잠든 사이에만 눈물을 보이는 <피아노2>(2000)의 세자르,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그 기억을 묻어버린 <슬리피 할로우>(1999)의 크레인, 집시에겐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마을 사람 앞에서 말없이 돌아서는 <초콜렛>(2001)의 루. 이 남자들은 모두 말수가 적고 손길을 아끼고 자존심이 강하다. 그리고 상실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조니 뎁은 “내가 연기했고, 내가 반응했던 캐릭터들은 모두 잃어버린 영혼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 잭 케루악과 윌리엄 버로스를 좋아하는 조니 뎁은 한곳에 묶일 줄을 모르고, 비어 있는 조각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곤 한다. 그 때문에 그는 <길버트 그레이프>(1993)를 불편하게 여겼다. “길버트는 내가 연기한 인물 중에서 가장 정상적이다. 나는 그게 편하지 않았다.” 육지에 올라온 고래 같은 엄마와 정신지체아 동생에게 매여 사는 길버트는 “우린 아무 데도 가지 않아”라고 동생을 타일렀지만, 집을 불태우고 나선 길 위에서는 “우린 어디로든 갈 수 있어”라고 고쳐 말한다. 한곳에 머물러 있을 때 길을 잃은 것처럼 막막하던 길버트는 끝을 모르는 길 위에서 행복해 보인다. 뉴욕대 교수 피터 바다치가 말했듯 “조니 뎁은 보헤미안이고 반문화적이다”.

바다치는 조니 뎁의 유일한 블록버스터인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를 보고 그런 정의를 내렸다. 조니 뎁이 롤링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를 모델로 삼아 창조한 캡틴 잭 스패로우는 아이라인과 금니, 피어싱으로 치장한, 70년대 록스타 같은 인물이다. 그는 우아하고 시대착오적이고 공기방울 안에서 떠다니는 듯하다.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그 자체로 새로운 성(性)이라고 불러야 할 듯한, 유일무이한 존재. <에드 우드> <비포 나잇 폴스>(2000)에서 복장도착을 경험했던 조니 뎁은 여전히 조그만 붓으로 일일이 다듬은 것처럼 세밀한 외모를 담대하게 덮어버린다. 그러나 그를 알아볼 수는 있다. 이 세상에 잘못 떨어진 외계의 존재 같은 조니 뎁은 결코 이곳에 속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오히려 그 때문에,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다. 캡틴 스패로우가 지옥 한가운데서도 무심하게 해골들 사이를 빠져나가며 “실례합니다, 좀 비켜주실래요?”라고 예의를 차리는 건 그가 지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상처입었고, 그 상처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지만, 지옥의 기억은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팀 버튼은 조니 뎁의 평온한 눈동자 아래서 불안하게 떨고 있는 영혼을 발견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영혼을 무장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조니 뎁이 지니고 있는 슬픔을 느꼈고, 그것이 일종의 유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거미 한 마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궤짝 위로 올라가는 크레인 수사관 또한 지옥을 겪은 청년이지만, 그 지옥은 필사적으로 기억의 그늘 아래 숨어, 코미디에 가까운 몸짓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것이다.

존재만으로 존재를 입증하는 배우

슬리피 할로우>

<초콜렛>

당혹과 슬픔, 어둠에 이끌리는 기이한 취향을 공유하는 팀 버튼과 조니 뎁은 로알드 달의 동화가 원작인 <찰리와 초콜렛 공장>을 막 끝냈다. 이 영화에서 조니 뎁이 연기하는 윌리 웡카는 비열한 세상을 등지고 은둔했던 초콜릿 공장 사장이다. 쾌활하지만 잔혹한 웡카는 조니 뎁이 연기한 많은 캐릭터처럼 과거에 관한 단서가 주어지지 않고 초연하며 어린아이 같은 면도 있다. 그렇게, 조니 뎁은 다시 아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니 뎁은 “지금 세상은 너무 끔찍하다. 눈을 감고 어린아이처럼 상상에 의존하지 않으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기원하지 않으면, 폭발해버릴 거다”라고 말했다. 살아서는 도착할 수 없는 어딘가, 어쩌면 네버랜드를 응시하는 아득한 그의 눈길은, 그처럼 절박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번도 터져나오지 못한 그 어두운 영혼은 40년을 견디면서 한 배우의 눈동자에, 그를 둘러싼 공기에, 깊은 자국을 새겨놓았다. <닉 오브 타임>(1995)의 감독 존 바담은 “조니 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크린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조니 뎁은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우다.

“그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배우”

주변인들이 말하는 조니 뎁

베니치오 델 토로(<라스베가스에서의 공포와 혐오> 배우) 조니 뎁이 사막 한가운데 빨간 컨버터블 자동차를 세워놓고 나를 불렀다. 그는 얼마 전에 에어컨을 고친 참이었다. 그런데 그는 창문을 닫고 히터를 작동시켰다. 조금 있다가 마약에 취해 있는 연기를 해야 한다면서. 그는 탈진한데다가 거의 미쳐 보였다. 조니 뎁은 언제나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데, 정말 재미있고 쉬워 보인다.

팀 버튼(<가위손> <에드 우드> <슬리피 할로우> 감독) 조니 뎁은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를 모델로 연기를 할 것인지 결정한다. 아마 <가위손>의 에드워드는 그가 키우던 애완동물이 모델이었을 것이다. <에드 우드>의 에드 우드는 로널드 레이건이었고, <슬리피 할로우>의 크레인은 안젤라 랜스버리(<제시카의 추리극장>의 배우)였다. 그는 13살 먹은 소녀처럼 행동하는 최초의 액션히어로가 되고 싶어했다.

크리스티나 리치(<눈물 흘린 남자> <슬리피 할로우> <라스베가스에서의 공포와 혐오> 배우) 아마도 조니 뎁은 다른 배우들이 허영심 때문에 마다할 일들을 기꺼이 할 것이다. 그는 이기심 때문에 일을 방해한 적이 없다. 그저 좋은 영화에 출연하고 좋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엔 무관심하다.

라세 할스트롬(<길버트 그레이프> <초콜렛> 감독) 조니 뎁은 괴상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그 뒤로 숨고 싶어한다. 그는 야심이 있지만, 허세 부리는 사람으로 보이는 걸 두려워하고, 아티스트가 되는 것도 두려워한다.

사라 제시카 파커(<에드 우드> 배우) 나는 자기 역할 뒤로 숨기만 하는 조니 뎁을 잘 몰랐다. 하지만 같이 일하면서 몰랐던 점을 발견했다. 그는 끊임없이 서성대면서 내게 물이나 뭐 다른 게 필요하지 않은지 물었고, 스탭들에게도 “케이블 나르는 일을 도와주고 싶은데,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제리 브룩하이머(<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제작자) 조니 뎁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다면 그를 쓰지 말아야 한다. 그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배우다. 그는 머리 속에서 이미 하고 싶은 연기를 생각하고 있고, 나 역시 그가 그렇게 하길 원한다.

하비 웨인스타인(<초콜렛> 제작자) 나는 조니 뎁이 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몇년 동안 흥행에 실패했지만,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엉덩이에 키스라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은 조니 뎁이 10마일 밖에서도 거짓을 냄새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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