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리는 사막 한복판. 두명의 저격수가 작전을 수행 중이다. 총구의 흔들림을 감추지 못하는 신출내기에 비해, “낮잠을 자는 듯” 평온하기만 한 명사수 토마스 베켓(톰 베린저)은 상부의 명령을 거역하고 100만번 중 한번이나 가능할 법한 저격을 성공시킨다. 그러나 어쩐지 어설프게 여겨졌던 이 상황은 일종의 시뮬레이션 훈련이었고, 저 멀리 진행되던 인질극은 영사된 화면에 불과했다. 좀전까지의 긴박한 상황들이 되감기되는 스크린을 뒤로한 채, 걸프전 영웅 정도로 보이는 젊은 상사에게 말대꾸를 일삼는 베린저의 모습은 안쓰럽기만 하다. 비디오용으로 만들어진 <스나이퍼3>의 도입부는 그처럼 순식간에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고, 이 첫인상은 러닝타임 내내 크게 변하지 않는다.
국가안보위원회의 고위급 간부와도 맞먹을 연배의 베켓은 20년 전에 입었던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중풍초기단계를 겪고 있으며, 옛날 전쟁영화를 보면서 과거의 악몽을 되새기는 게 일상이다. 그러나 퇴역직전의 노병은 또다시 국가의 부름을 받고 비밀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비극의 땅, 베트남으로 향한다. 밀림 한가운데에서 잃었다고 믿었던 전우, 폴 피네간을 사살하는 것이 그의 임무. 베트남전 이후 정체를 숨긴 채 CIA를 위해 일했던 피네간이,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적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말이 되게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의 그럴듯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실제 전쟁과 정치가 그러하듯 그다지 당위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신난다”며 포화 속을 누비던 베트남전의 영웅 피네간이 국가로부터 이용만 당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지점.
“늙은 거야? 아니면 마음이 변한 거야?” 아무리 어려운 사살도 한방이면 가능했던 베켓이 어처구니없이 임무에 실패한 뒤, 안보위원회의 간부는 중얼거린다. 영화를 관통하는 질문이 될 만한 이 대사에 대한 대답은 ‘둘 다’가 될 것이다. 어차피 과거의 액션영웅이 이래저래 수난을 당하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 아니던가. 톰 베린저의 노쇠한 눈은 스나이퍼의 매서운 눈매와는 거리가 있고, 웬만한 FPS게임(1인칭 액션슈팅게임)으로 저격수의 시점이 주는 긴박함을 쉽게 경험할 수 있게 된 관객에게, 전쟁을 그리워하는 노병의 장난 같은 총격전은 별로 흥미롭지 않다. 버디물의 꼴을 갖추기 위해 등장한 매력적인 베트남 형사 콴(바이런 맨)이, 어울리지도 않는 무술대결에 열을 올리며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게 된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