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아마도 해외 현지 촬영이 화제성 한국 드라마의 필수 장치로 등장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발리에서 생긴 일>을 시작으로 <영웅시대>와 <황태자의 첫사랑> <풀하우스> <파리의 연인> <두번째 프러포즈> <미안하다 사랑한다>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등이 해외의 풍광을 드라마의 주요 배경으로 활용한 사례들이다. 결과는 엇갈린다. <황태자의 첫사랑>은 일본 훗카이도와 발리, 타히티 등 세계의 유명 리조트를 돌며 드라마 전체의 배경으로 삼았음에도, 시청자들의 시선끌기에 실패한 경우다. 풍광이 드라마의 이야기와 연기를 압도한 결과였다.
반면 <발리에서 생긴 일>과 <파리의 연인>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은 극 초반과 후반부에서 제목에 거론된 지역을 각각 배경으로 활용해 성공을 거뒀다. 이야기와 배경의 이미지가 화학적 결합을 이룬 행복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국적인 풍광은 이야기 구조 안에 녹아들어, 초반 시청자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끝무렵 이야기를 닫는 데서도 해외 배경은 겉돌지 않고 극적 효과를 고조시키는 구실을 해냈다.
해외 현지 촬영이 시도되는 이유는 세가지 쯤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국적인 볼거리를 통해 멋진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하나다. 이야기 전개상 해외 촬영이 빠져선 안되는 경우도 있다. <발리에서 생긴 일>과 <파리의 연인>이 발리와 파리 현지 촬영 없이 방영된다면 상당히 생뚱맞은 느낌을 줄 것이다. 물론 이 경우도 국내에서 비슷한 곳을 찾아 촬영하거나,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처럼 미국이지만 실제론 하버드 아닌 유에스시대학에서 촬영하는 편법은 가능하다.
요즘 들어선 이른바 ‘협찬’이라는 제3의 요인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힘을 홍보에 빌리려는 해외 쪽의 자발적 요청과 협조 및 편의 제안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류드라마 열풍이 동남아와 중국을 거쳐 일본까지 휩쓸면서, 상품과 지역을 한국 드라마 안에 배치함으로써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제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 올 2월16일 첫 방송이 나갈 에스비에스 <홍콩 익스프레스>의 경우, 홍콩관광청이 2억원의 현금을 협찬하며 현지취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도 한국 드라마 현지취재 유치를 위해 물밑교섭을 벌인다는 얘기가 들린다. 일본 제2의 대도시이면서도 일본 드라마들이 거의 도쿄를 배경으로 제작되는 바람에 도시 이미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이럴 바엔 차라리 일본에서도 인기있는 한국 드라마를 활용하자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 이유는 별개가 아니며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문제는 세 요인의 갈등과 경합이 드라마의 완성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멋진 그림에의 욕심이 이야기 전개의 필요성에 비해 부수적인 요인으로 치부할 수 있는 반면, ‘협찬’의 그늘은 자칫 이야기 구조 자체를 가리게 될 지도 모른다. 국제 관광자본의 협찬에 크게 의지했던 <황태자의 첫사랑>은 거듭 ‘반면교사’다. 한국 드라마가 국제적 홍보 대상으로까지 성장한 것은 반길 일이지만, 성장만큼 그늘 또한 넓어지고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