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은따’가 더 적합한 표현 일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게 그들에 대해 물어보면 흥미로운 존재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만나러 가겠냐고 물어보면 “다음에…” 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들은 바로 다큐멘터리, 극영화의 그늘에서 ‘은근히 소외’받고 있는 이들의 이름이다. 이미 스스로가 대단한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21세기 최고의 쇼맨 마이클 무어의 자극적인 선동영화라면 모를까, 다큐멘터리 혹은 다큐멘터리스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쩐지 비장한 기운부터 느껴졌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대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어쩌면 그동안 골치 아픈 정치적 다큐멘터리나 고매한 예술가의 생애를 지루하게 늘어놓는 창의력 없는 용비어천가에 질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 전 에 소개한 바 있는, 경련 일으키는 영화 을 비롯, 이곳 뉴욕의 극장에서 극영화 이상으로 자주 만나고 있는 일련의 다큐멘터리들은 오래된 나의 선입견을 서서히 바꿔놓고 있다.
작년 말에 개봉 한 이후 계속되는 요청에 의해 연장 상영에 들어간 제시카 유의 는 헨리 다거(Henry Darger) 라는 한 예술가의 삶을 담고 있다. 생전에 그는 참 외로운 남자였다. 친구도 없었고, 가족도 없었다. 심지어 이름이 정확히 헨리 다거인지, 헨리 다저인지조차 불명확하다. 평생에 남긴 사진은 고작 3장 밖에 없고, 그의 삶은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하지만 죽은 이후 이웃에 의해 발견된 그의 방대한 작업은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1973년에 죽은 이 노인은 1909년부터 좁은 골방에서 틀어박혀 홀로 비현실의 왕국을 조용히 건설하고 있었다.
이 가난한 노인이 평생을 두고 만든 (The Story of the Vivian Girls in What is Known as the Realms of the Unreal or the Glandelinian War Storm, 줄여서 In the Realms of the Unreal) 는 ‘비비안걸’이라고 부르는 7명의 소녀들이 어린이를 노예로 만드는 악의 왕국 군대에 맞서 싸운다는 그림과 함께 있는, 1만5천 145페이지에 달하는 상상력 가득한 동화다. 한번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 없는 헨리 다거는 거리에서 주워온 전단지와 잡지, 동화책에서 베끼고, 오려내고, 꼴라쥬한 소녀들의 얼굴로 비비안 걸의 초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제시카 유는 그저 이 불행한 예술가의 삶과 작업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감독은 1차원의 세계에서 누워있던 소녀들의 날개에 3차원의 움직임을 달아주며 헨리 다거의 숨겨진 왕국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새롭게 축조한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또 한편의 다큐멘터리는 영국 저널리스트 자나 브리스키가 인도의 창녀촌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진 찍기를 가르치면서 일어난 일들을 담은 (Born Into Brothels)이다. 그녀는 당장의 허기를 채워줄 지폐 몇 장 대신, 아이들의 손에 카메라를 쥐어주며 세상과 통하는 문을 열어준다. 값싼 동정이나 허황된 인류애 대신 후미진 삶 속에서도 공평하게 피어나는 일상의 환희를 담아낸 이 영화는 극영화가 절대로 담아 낼 수 없는 감동을 벅차게 전달하고 있었다.
한동안 다큐멘터리는 현실 그 자체이거나, 프로파간다의 선두에서 붉은 기를 흔들어대는 영화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그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훨씬 낮은 곳에서 예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뒤늦은 반성문인 셈이다. 그들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것, 그것은 새로운 취향의 발견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제2의 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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