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의 땀구멍 하나까지 보여주는 의 첫 장면 근접촬영은 ‘턱시도’ 따위의 할리우드식 기계 의복은 잊으라는 주문이고, 성룡의 육체성 하나만으로 이 영화가 완성될 것이라는 강력한 최면이다. 그가 출연하는 영화 중에 과연 이런 크기의 클로즈업이 있었던가를 돌이켜볼 때, 이 첫 장면의 애절한 수신호를 이해하게 된다. 더불어 재간둥이 하인이거나, 영어 곧잘 하는 아시아인 형사로 인기를 끌어올리긴 했지만, 성룡 그 자신도 우는 듯 웃는 듯한 괴상한 표정으로 북받치는 감정을 표현하는 그런 역할이 오랜만에 하고 싶었던 듯하다. 는 (1985) 1편이 만들어진 지 20년 만에 성룡이 홍콩으로 다시 돌아와 찍은 ‘폴리스 스토리’의 최신 버전이다.

진 반장과 그의 팀원들은 유능한 수사력을 동원해 범죄자를 소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복면을 쓴 은행강도들이 활개치자, 진 반장은 팀원을 이끌고 그들의 소굴로 들어간다. 그러나 경찰들은 마치 게임의 단계처럼 등장하는 올가미에 걸려 하나둘 죽어간다. 진 반장은 혼자 살아남지만,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오명과 죄책감으로 낙오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젊은 신참 정소봉(사정봉)이 그를 찾아오고, 진 반장은 그의 조력으로 자의 반 타의 반 다시 작전에 나선다. 마치 게임을 즐기듯, 스포츠를 즐기듯 범행을 저지르는 젊은 다섯명의 범죄자. 그들 중 우두머리에 속하는 죠(오언조)는 경찰관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리며 살아온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경찰 혐오증을 갖고 있고, 잔악한 방식으로 경찰들만을 골라 죽이려 든다. 그 와중에 진 반장의 애인 가이(양채니)가 온몸에 폭탄을 끌어안고 죽을 위기에도 처하지만 진 반장은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는 할리우드에서도 수없이 통용되어온 추락한 어느 형사반장의 ‘복권(復權) 스토리’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성룡의 영화적 입지, 혹은 문화적 아이콘- 웃기고 귀엽고 날쌔기만 한 보조적인 아시아인- 으로는 타협이 쉽지 않은 캐릭터다. 감정이 지나치게 격앙되어 있고, 할리우드는 성룡에게서 그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성룡은 홍콩 외유를 통해 그 역을 소화한다.

언제나 선과 악의 구분이 지나칠 정도로 명확한 성룡 영화의 특징은 에서도 여전하다. 진 반장과 범죄자 사이의 대립관계도 선이 뚜렷하다. 그중에는 범죄조직을 이끄는 죠가 경찰청장인 아버지의 가혹함으로 경찰에 증오심을 품고 범죄를 저지른다는 눈길 가지 않을 억지스런 배면의 동기가 있다. 그러나 세대차를 느낄 만큼 차이가 큰 두 진영- 성룡과 어린 범죄자들- 이 대립해야 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 혹은 다른 재미들이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늙은 성룡의 육체성이 팔팔한 젊은이들의 ‘익스트림 스포츠’의 형식과 겨룬다는 착상은 기가 막힌 연계점을 이룬다.

몸이 움직일 수 있는 극한의 동선을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즐기는 세대의 인물들과 몸을 도구삼아 액션스타 또는 스턴트의 대명사 또는 기예의 명인 자리에 오른 성룡이 격돌한다는 것은 기발한 구도이다. 홍콩 폴리스 시절, 성룡의 액션 설계를 대변했던 이층차 위에서의 스턴트 장면, 또는 고층 빌딩에서의 하강 스턴트가 오랜만에 등장하지만, 예전보다 느려지고 둔해지고 안전해진 감은 어쩔 수 없다. 그보다는 실제로 범죄자를 잡기 위해 익스트림 스포츠 경연장을 찾은 성룡이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는 범인과 몇 발짝을 사이에 두고 특유의 달리기 폼으로 뒤쫓는 그 짧은 추적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라면 백미다.

그러나 시리즈의 대단원이라고 치하하기에 는 함량미달의 작품이다. 구도와 착상은 신선했지만 성공적으로 재현해내질 못한다. 그보다 한 가지 지혜롭게 발휘되는 장치가 있다면 그건 파트너십이다. 에서는 쇠약해진 성룡의 나머지 절반을 신참 경찰 정소봉 역을 맡은 사정봉이 떠안는다. 사정봉은 영화 속 진 반장을 존경하는 역일 뿐 아니라 성룡의 몸이 과거에 혼자 해냈던 역할을 현재에 나눠 맡는다. 이건 성룡이 등에서 배워온 짝패로서 흥미를 유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슬픈 일이다. 실상 52살 먹은 액션배우에게 더 빠르고 강력한 액션을 요구하는 것도 못할 짓이기는 하다. 그런 점에서, 는 성룡 영화에 관한 성격을 일러주는 영화가 된다. 드라마투르기가 거칠고 유치하다는 정도는 성룡 영화의 큰 흉이 되지 않는다. 언제나 그 누락은 있어왔고, 또 그렇게 버텨왔다. 대신 감독의 이름에 따라 누구의 영화라고 부르지 않고 성룡이 주연을 맡는 것을 근거로 언제나 성룡 영화라고 불러왔던 것이 일종의 알리바이가 될 텐데, 성룡의 영화는 몸의 훈련으로 이뤄진 영화이기 때문에 어느 한계점 이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닌 것이다. 몸을 훈련시켜 명인이 된 광대에게 나이는 독약과도 같다.

시리즈

홍콩 대표 경찰 진가구의 20년

첫 번째 (1985)가 탄생한 지 근 20년이 지났다. 부수고 죽이던 한 시대를 지나 성룡의 등장에 따라 홍콩영화는 피하고, 이용하는 액션 신세계를 즐기기 시작했다. 대강 성룡의 필모그래피를 나누자면, 권격영화 시기, 홍콩 경찰물 중심의 시기, 현재의 다종다양한 할리우드 코믹 액션물 시기 정도로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으로 스타 자리에 오른 성룡은 사극에서 현대극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기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해나갔다. 등의 권격영화를 지나, 같은 근시대물 영화 이후에 성룡의 가장 성공적인 시리즈 가 시작되었다. 그 이듬해 1986년, 비운의 의리파 이 홍콩 극장가를 휩쓸고 있을 때도 성룡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어떻게 위험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유쾌하게 고민했다. 그런 점에서 는 성룡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편의 내용은 잔악한 마약상과의 암투였다. 홍콩 경찰 진가구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본드 시리즈에 ‘본드 걸’이 있듯이, 폴리스 시리즈에는 ‘폴리스 걸’이 등장하는 식의 규칙도 이때부터 세워졌는데, 장만옥과 임청하가 1편에 등장한다. (1988)는 으로 국내 개봉했는데, 순찰 경찰로 강등당한 진가구가 탈주한 범인과 한바탕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벌인다. 장만옥이 애인으로 출연했으며, 무엇보다 온몸에 불붙은 다이너마이트를 감고 뛰어다니는 장면으로도 유명했다. (1992)부터는 구역을 넓혀 중국과 러시아로 날아간다. 에서는 양자경이 본토 여경찰로 국제 마약 밀매범 소탕작전에 협조했다. 그리고 (1996)에서는 러시아를 무대로 핵무기 밀매범들과 전투를 벌인다.

시리즈는 성룡의 몇몇 시리즈 중에서도 으뜸이고, 성룡 영화의 자랑인 수없이 많은 NG장면들이 만들어졌다(참고로, 성룡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NG장면을 넣기 시작한 것은 1983년 부터다). 이번 영화 에서 선보이는 장면 중 이층버스 위에서의 묘기 역시 에서 애인을 구하기 위해 펼쳤던 스턴트와 유사하다. 한편, 시리즈는 아니지만, 빌딩 수직 강하 스턴트 장면은 이번 영화의 감독인 진목승과 성룡이 공동 연출했던 에 나오는 장면과도 유사하다. 는 대단원으로서보다는 성룡의 지난 홍콩 폴리스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효과를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