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 고전영화 컬렉션’은 그간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DVD 제작이 꺼려지던, 그래서 보기 힘들었던 한국 고전영화로선 단비와 같은 기획이다. 이는 자국의 고전영화를 어떤 매체로도 접할 수 없는 한국 영상산업의 현실을 깨우치는 목소리이자 시대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영화를 기록하고 보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장기적 계획과 유기적 실행이 기대되는 가운데 와 가 시리즈의 첫발을 내딛는다. 한국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가치 또한 적지 않은 두 영화다.
최인규의 는 해방공간의 감격과 환희 속에서 분출한 광복과 항일투쟁 영화의 효시에 해당하며, 일제 강점기에 친일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전환점을 마련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해방 직전 지하운동을 펼치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을 주인공과 주변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틋한 이야기와 함께 엮고 있는데, 영화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한국영화 2세대 감독으로서 뛰어난 후배감독들을 배출해낸 최인규, 해방을 맞아 동료 배우들과 애국가를 목놓아 불렀다는 전창근, 촬영을 맡은 한형모 외에 단역으로 출연한 김승호의 이름이 발견되기도 한다. 는 김기영이 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한 영화다. 대중의 머리 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1990년대 말 갑작스런 환대로 인해 시간의 무게를 털어낸 김기영은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독특하게 기억되는 이름이다. 그것이 혹시 일시적이고 허전한 반응이 아닐까 염려되는 지금, 초기작 를 본다는 것은 김기영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조선 후기 한 지방을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과 신분사회의 비극을 다룬 는 김기영 세계의 진정한 시작점이면서 같은 이후 대표작의 일부 원형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들어지고 50년이 지난 작품들이다. 화질과 음질이 좋지 않지만 완벽한 복원을 기대하기 힘든 현실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일차적으로 남겨진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기록해놓은 데 의미를 둬야 하겠다. 영상자료원장 이효인의 영화 소개, 개봉 당시 두 영화를 보았던 영화평론가 김종원의 회고가 수록되어 있으며, 출연·제작진과 영화에 대한 꼼꼼한 안내서가 별책으로 제공된다. 아쉽게도 후반부가 유실된 채 남아 있는 두 영화의 유실 부분 시나리오도 텍스트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