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심상치 않다. 싸울 때마다 진다는 뜻이다. 18연패와 원정경기 21연패의 기록을 세운 삼미 슈퍼스타즈의 전설 아닌 전설이 떠오른다. 이 책은 물론 일본판 삼미 슈퍼스타즈에 관한 책은 아니다. 2000년 가을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행한 5회의 연속 강의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의 저자 안도 다다오(1941∼)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예일대, 컬럼비아대, 하버드대 객원교수와 도쿄대 교수를 역임한 그는 오사카에서 빈민의 아들로 태어나 고교 졸업 뒤 프로 권투 선수 생활을 했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
우리 못지않은 학력 위주 사회인 일본에서 그도 학력 콤플렉스를 겪었지만, 책을 읽고 생각하고 걸어다니면서 건물을 직접 보고 스케치하면서 배웠다. 고전 건축에서 첨단 건물에 이르는 무수한 건물들은 그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이자 대학 강의실이었다. 이 책에서도 그는 반드시 과거의 훌륭한 건축을 봐야 한다고, 건축 공간을 직접 체험해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선인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실현해왔는지, 바꿔 말하면 나 자신이 부정하고 극복하려는 대상의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 새로운 발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목이 왜 연전연패인가? 독학으로 공부한 건축가의 고난 극복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다오가 건축설계공모에(다다오는 competition의 일본식 표기 ‘콤페’라 일컫는다) 응모하면서 실제로 연전연패했기 때문이다. 록펠러센터, 시카고 트리뷴,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홍콩 상하이은행, 실로 그가 응모하지 않은 굵직한 건축 프로젝트가 없을 정도였지만, 결과는 연전연패였다. 도대체 왜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 ‘콤페’에 뛰어들었을까?
느슨한 상황이 아니라 설계 공모작을 준비하는 긴장된 상황에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모 요강에 나와 있는 현실적 조건들을 충분히 숙지하면서도, 그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공모에서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짜낸 아이디어는 계속 남고, 언젠가 다른 형태로 실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다다오에게는 설계 공모 당선이 목적이 아니라 설계 공모작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자 또 하나의 살아 있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다다오의 연전연패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연전연승의 기록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