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의 등에 날개가 돋았다. 이런 상상에서 <eden>은 출발한다. 그리고 이 상상이 커다란 3절지 260장에 옮겨졌다. 보통 만화 원고의 몇배가 되는 큰 사이즈에 스크린 톤 대신 먹의 농담과 직선적 펜 선 대신 붓의 유려함으로 표현된 흑백의 매력은 열정적인 탐구자인 작가가 일궈낸 성과다. 꽤나 미련스러워 보이는 이 작업을 끝끝내 마무리한 끈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두호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만화는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그리는 것. 무거운 엉덩이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다.
<eden>은 주류만화와 비주류 만화의 미묘한 선상에 있다. 원고가 만들어진 이력이나 출판된 책의 모양새는 비주류지만, 담아낸 이야기는 주류와 닮아 있다. 날개 달린 괴수나 이 괴수에게서 공격을 당한 뒤 날개가 돋게 된다는 설정은 장르만화의 그것처럼 드라마틱하지만, 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주류의 문법에서 벗어난 독특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특히 문자없이 이미지만으로 전달하는 이야기 방식은 상상력의 여지를 넓힌다. 현실의 나에게 날개가 돋았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은 그 상상의 끝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비참함의 뿌리에는 인간의 욕망이 있다.
비주류와 주류가 적절하게 혼용되어 있는 이 만화에서 한국 만화 혹은 일본 만화의 대안을 발견할 수 있다. 몇주 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갔을 때 들른 쇼핑몰의 만화서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만화가 아닌 기리코 나나난, 모치즈키 미네타로, 마쓰모토 다이요 같은 작가들의 만화만 팔았고, 만화책 가격도 보통 만화책보다 비싼 1천엔 이상이었다. 대량생산 저가의 대량판매라는 일본식 만화시스템의 한켠에 고가 소량판매라는 새로운 대안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물량의 폭주로 길을 잃어버린 한국 만화계가 가야 할 길인지도 모르겠다. 정철의 <eden>을 펴낸 새만화책은 매우 적극적으로 한국 만화의 대안을 탐구하고 있는 출판사다. 꾸준히 작품목록이 쌓이는 만큼 한국 만화의 가능성은 그만큼 확대된다. 1, 2년 전부터 서점으로 유통되는 대안적 만화들의 주된 흐름은 정서에 호소하는 컬러 에세이 만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강도영의 가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 이후 엠파스에 연재되는 강도하의 와 파란에 연재되는 양영순의 <1001>이 웹 인터페이스에 적합한 이야기 만화를 확인시켜주었다. 한정된 독자층과 한정된 스타일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혀가는 잡지연재 만화와 달리 새로운 대안 만화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화하고 있다. 정철의 <eden>도 그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