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겹겹의 어떤 반복구조로서의 완성처럼 느껴졌다면, 은 전에 말한 대로 “단선적인 선내에서 양식적인 것이 개입하는” 영화였다. 전작과 같은 방향으로 한번 더 나갈 것인지, 처럼 조각들이 모여서 총합처럼 느껴지는 그런 영화의 방향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이 되어 있나.
=구조적으로 지금 나와 있는 트리트먼트만 놓고 보면, 하고 더 비슷한 것 같다. 대구가 더 잘 맞고 아우러지면서 끝이 나는 그런 감이 더 있다. 좀 달라질 건 속도감이나 페이스라고 해야 하나. 줌인아웃을 많이 쓸 예정이고, 내레이션도 넣을 거고, 영화 속 영화 인물들의 나이가 내가 지금까지 다뤘던 인물들의 나이보다 훨씬 젊고, 뭐 그런 것들 때문에 거기서 오는 다른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같은 경우는 처음에 어떤 상황이 있고, 거기에 대해 일차적으로 딱 떠오르는 내 정서적인 반응이 있고, 그리고 그 반응에 대해서 다시 약간 의심해보는 경우다. 살아가면서 수없이 떠오르는 정서적인 반응을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게 이다. 이번 영화의 시작점은 조금 다르다. 어떤 상황이 떠올랐을 때 그 상황 자체가 이상하게 스스로 완성된 구조를 만들어내는 형태가 있다. 그 형태가 이미 완결성 같은 걸 갖고 있는 경우다. 그 안에 들어오는 소재들을 잘 뽑아내면 좋겠다 하는 욕구가 드는 영화가 있는데, 그게 이다. 물론 다 만들어지면 똑같은 영화이고, 정서적인 반응을 하게 되겠지만 시작점에서는 그런 차이점이 있다.
-기술적으로 보면 줌렌즈와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역시 처음 시도하는 것 중 하나다.
=전 작품에도 줌인은 준비만 하다 못했고, 내레이션은 예전부터 흥미가 있었다. 때가 돼서 하고 싶은 걸 실천하는 것 같다. 트리트먼트 보면서 맞겠다 생각한 것도 있고.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왜 달리나 트래킹이 아니고 줌이나 내레이션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줌인도 쓰는 마당에 컷으로 들어가나, 달리, 트래킹을 쓰나 이제는 거부감 같은 건 없다. 이 작품에서도 줌인을 쓰지만 컷도 쓸 수 있다고 본다. 다르다고 느꼈던 차별이나 태도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전에는 롱테이크로, 앵글도 좀 넓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꾸려나가려고 했던 게 나한테 긴장감도 주고 재미있었다면, 부터 이완된 것 같다. 또 많이 했으니까 당연히 다른 걸 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충분히 해봤다고 할 만큼 그 앵글에서 오래 있었다는 느낌도 든다. 몇 개의 줌인은 보통 다른 영화들처럼 정서적인 반응을 증폭하기 위한 것일 수 있지만, 에서 줌인 사용은 나에게 90% 이상 실용적인 줌인이 될 거다. 컷으로 들어가는 걸 줌인으로 대신하는 거다. 그리고 내레이션은 담아내고 싶은 정보를 빨리 소화할 수 있는 방법도 되고, 긴장 이완시키는 데 있어서 액션과 대사만 갖고 하던 것에서 옵션 하나가 더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테이크 수를 많이 줄였다고 들었다. 그렇게 되면 연출방식에서도 차이가 생길 것 같다.
=영화의 페이스, 연기의 선명함, 눈치채지 못할 작은 실수에 대한 나의 연출자로서의 관용 같은 것들이 달라진다. 그런데 나는 그게 다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테이크를 열번을 더 가면서 만드는 작은 차이가 스크린상에서 빠르게 지나갈 때 느껴지는가 아닌가에 대해서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게 된 것 같다. 이 정도의 노력을 들여서 이런 결과가 나오면 낭비다 아니다, 하는 판단이 선 것 같다. 어떤 테이크는 20번을 갈 수도 있지만, 어떤 테이크는 미세한 수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면 배우에게 연출지도하는 말도 조금 달라지겠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어떤 사진을 오래 쳐다보면서 감상하는 방식하고 영화 같은 활동사진을 감상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면, 사진을 오래 쳐다볼 때의 체험에 대해서 그동안 어떤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성향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나로 하여금 작은 것들에 연연하게 했던 것 같고…. 근데 관객 반응을 보면서 거기에 쓸 것을 딴 데 쓰자, 하는 실용적인 판단을 한 것 같다.
-은 7일, 은 48시간, 이렇게 대개 제한된 짧은 기간 동안의 일을 영화의 소재로 정한다. 이번에도 역시 영화 속 영화와 영화 속 현실 모두에 시간 제약을 두는데, 그럼으로써 다른 어떤 요소들의 밀도가 높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것도 그냥 직관적으로 그렇게 가는 건데, 분석할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 같다. 근데 분석을 안 해봤다. 영화적으로 시간이 짧은 편이니까 자연스럽게 일상의 작고 하찮은 행동들을 연이어 놓으면서 갈 수 있는 이점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드라마틱하지 않은 신들로 생활을 해석해보려고 하는 거니까, 짧은 영화 속 시간대일수록 이점이 있는 것 같다. 처음 구상할 때부터 여기서 시작해서 여기서 끝내야겠다, 그렇게 떠오른다. 인물형도 그렇고,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갈등이나 딜레마도 그렇고,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종류나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질문은 언제 심심할 때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웃음)
-일상에서 작동하는 어떤 환상성에 대해 항상 경계심을 보여 왔는데, 어찌 보면 영화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바로 그런게 아닐까 한다. 어떤 영화를 보고 영향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그 안의 환상성에 사로잡혀 내 걸 조금은 내줬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번에는 그 과정을 오히려 이야기의 소재로 채택한 거다. 그전에 경계하던 부분을 이 영화에서는 정면으로 다루는 거다. 그렇다면, 환상을 일상의 차원에서 표현해보겠다는 것인지, 환상과 현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역학에 대해 이제 인정하겠다는 변화인지 알고 싶다.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영화란 걸 하나의 단순화된 환상이라고 치고 그것과 영화 속 현재의 인물이 느끼는 것을 놓고 생각을 해보면, 대사로 직접 거론한다든지 하는 방식은 안 쓸 것 같고, 대신 인물이 어떤 영화를 보고 나왔다면, 구체적인 어떤 영화가 있는 거고 구체적인 관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여러 각도의 코멘트가 일어날 거다. 그 영화를 보고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영화 속 영화와 현재 인물 사이의 구체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한 코멘트도 있을 것이고, 또 마무리할 때 그런 걸 태도 정리하는 것도 있을 테고. 정확히 말하긴 힘들지만, 그런 것들이 내 나름대로의 모아진 대답들로 나올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환상과 현실이라는 점에서 나는 사람이 현실을 다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체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걸 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나. 환상을 경계한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한계가 있는 얘기인데 기준을 굳이 따진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자기를 억압하고, 자기를 쓸데없이 잔인하게 하거나, 바보스럽게 굴도록 만드는 환상 기제들을 살면서 필요한 시간 안에 깰 수 있는 만큼의 능력을 주는 게 바로 문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도 그런 거고. 모든 환상이 다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막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비속한 환상이라고 해도 그것이 너무너무 힘든 전쟁터의 병사나, 고된 일만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당장의 행복감을 준다면 그건 좋은 거다. 환상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억압하고 있을 때의 환상을 경계하는 거다.
- 이후 다시 부정의 에너지가 강해진 것 아니냐는 말들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는 어떨 것 같은가.
=지향점이나 만드는 원칙 같은 게 변한 것 같진 않다. 비유하자면, 내가 A라는 사람을 만나고 B라는 사람을 만날 때 서로 다르게 구는 그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선택한 소재와 거기서 발생한 형식이 있고, 배우들이 있고, 그 형태를 좇아가면서 뭔가 해보는 거고, 거기에서 뭔가 모아져서 나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