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후는 예술이자 불굴의 의지다… 나는 쿵후를 일상에 접목시켜 사람들에게 쿵후의 참뜻을 알려주고 싶은 소망이 있다.” 전작 에서 주성치는 캐릭터의 입을 빌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이전 에서도 쿵후의 ‘일상화’를 선보였던 주성치이지만, 그의 진정한 소망은 ‘요리’와 ‘축구’ 같은 우회로를 통하지 않은 본격 쿵후영화였다. 그리고 이제 어린 시절부터 쿵후를 익혀왔고 이소룡의 팬이었던 주성치의 꿈이 마침내 실현됐으니, 그것이 바로 이다. 중국어 원제가 그냥 ‘쿵후’(功夫)라는 점 또한 그의 의욕이 대단함을 엿보게 한다.
1940년대의 상하이, 살벌한 분위기의 조직폭력단 도끼파가 거리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30년대 시카고의 마피아가 그랬듯, 살육을 일삼으며 조직을 확장해간다. 힘있고 돈있는 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가진 것 없고 재주도 없는 청년 싱(주성치)이 설자리는 없다. 그는 동생뻘되는 물삼겹과 함께 막연히 조직폭력배가 되길 갈망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 어수룩한 2인조가 도끼파를 사칭하며 들이닥친 곳은 우리네 벌집촌을 연상케 하는 마을 돼지촌이다. 밉살스런 주인여자가 횡포를 부리곤 있지만, 나름의 단결력과 숨은 내공이 존재하는 탓에 싱의 사기극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진짜 도끼파가 이들의 시비에 휘말리게 되면서 도끼파와 돼지촌의 피비린내나는 혈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불우한 주인공이 자신의 숨은 능력을 개발해 성공한다는 줄거리나 과장된 캐릭터의 만화 같은 행동, 그리고 어처구니없이 튀어나오는 웃음 등 은 분명 주성치표 영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전의 주성치 영화와의 차이점도 상당히 많이 엿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좀더 정교한 CG작업을 통해 비주얼의 완성도를 높인 점이 연장선상에 있다면, 자신의 영화적 뿌리를 보여주려 애쓴다는 점은 분명 주성치의 새로운 면모로 보인다. , 로드러너와 코요테 등의 패러디야 유머로 봐줄 수 있지만, 버스터 키튼을 연상케 하는 무성 슬랩스틱코미디,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주연의 같은 3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에 대한 헌사, 경극을 연상케 하는 무대 설정 등은 주성치의 진심이 느껴지는 요소들이다.
이 전작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캐릭터에 있다. ‘주성치는 좀더 적게, 다른 캐릭터는 풍부하게’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 이 영화의 캐릭터 배분은 주성치 영화 마니아에겐 의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정도. 물론 영화의 핵심과 결말에 주성치가 연기하는 싱이 자리하고는 있지만, 돼지촌의 주인 남녀를 비롯해 쿨리, 테일러, 도넛, 심금을 울리는 가락, 야수, 물삼겹에 이르기까지 시선이 고르게 퍼짐으로써 영화는 좀더 보편성을 획득했다. 한마디로 주성치의 개인기보다는 전체적인 팀워크에 좀더 신경을 많이 쓴 이면에는 ‘감독 주성치’의 자신감도 엿보인다. 또한 김빠지는 대사와 상황의 반복 등이 주된 장치였던 ‘마니아용’ 유머도 많이 세련화된 인상을 준다. 특히 단검 던지기 장면 등 CG를 이용한 유머는 그동안 주성치 영화를 보며 ‘저게 뭐야’라고 비아냥거렸던 이들조차 허리를 꺾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가장 강조하는 요소는 쿵후 그 자체다. 각 캐릭터들이 구사하는 쿵후권법은 주성치식 유머로 포장되긴 했지만, 선과 악이 충돌하는 대목에 오면 비장하기 짝이 없다. 장철이나 호금전의 영화를 떠올릴 정도라면 과장이겠지만, 와이어가 동원된 주성치식 스톱모션으로 멈춰진 각각의 무술 동작은 쿵후의 다양한 세계를 음미하기에 손색이 없다. 소리로 적들을 제압하는 사자후, 상대방의 힘을 되받아치는 유연성의 무술 영춘권, 발차기 한번으로 열두명을 쓰러뜨리는 십이로담퇴, 초강력 주먹 홍가철선권, 한번에 여섯개의 창을 다루는 오랑팔괘권, 거문고의 소리로 상대를 겨냥하는 음공권 등, 에 나오는 갖가지 권법은 보는 것만으로도 무협 마니아들을 흥분시키는 무언가를 담고 있다. 이 영화의 멜로 코드의 핵심 상징으로 등장하는 롤리팝 사탕은 어쩌면 주성치의 쿵후에 대한 오랜 애정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주성치는 극중 싱이 그랬듯 드디어 여래의 세계를 완성해낸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영화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화 도입부에는 ‘쿵후’(功夫)라고 씌인 거대한 협곡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나비가 등장하며, 중반부에도 애벌레에서 변태해 훨훨 나는 나비가 보인다. 어쩌면 이제 그는 이 나비처럼 좀더 자유롭게, 자기 마음대로 영화를 요리하는 법을 깨달았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은 ‘마니아만의 주성치’에서 환골탈태한 ‘유니버설 주성치’의 진정한 시작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속 각종 패러디들
에서 까지
에 이 웬말이냐고? 하지만 주성치는 스탠리 큐브릭의 이 사이코스러운 영화의 한 장면을 패러디하고 말았으니, 그건 정신병원에 은거하고 있는 강호의 고수 야수를 소개하기 위한 장면에서였다. 주성치가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야수의 방문으로 다가서는 순간, 복도 안에 핏물이 일렁이는 의 유명한 장면이 그대로 보여진다. 일당 백의 싸움이 수시로 펼쳐지는 영화이다보니 또한 패러디의 타깃에서 피해갈 수 없었다. 돼지촌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혈투에서 도끼파 대원들은 싱의 맹공에 차례차례 하늘로 솟았다가 우수수 쏟아진다. 주인 여자 뚱녀와 싱의 추격전은 ‘루니툰스’의 주인공 로드러너와 코요테의 그것을 똑 닮았다. 이들의 발은 만화처럼 둥그런 회오리 속에 잠겨 있고, 뚱녀는 결국 ‘체포’에 실패하고 만다. 에서 차용한 것은 대사다. 돼지촌의 세 고수 중 한명은 죽기 직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유언을 남긴다. 자기반영적인 유머도 있다. 돼지촌으로 입성하는 주성치는 아이들이 갖고 노는 축구공을 발로 밟아 터뜨린 뒤 “아직도 축구 같은 것을 할 일이 있냐”며 를 넘어섰음을 유머러스하게 암시한다. 도끼파가 거리를 주름잡은 순간, 비참하게 널브러져 있는 시체의 이미지는 30년대 시카고의 저널 등에 등장했던 실제 사진들에서 영감을 얻은 게 분명하고, 돼지촌의 풍경을 롱테이크로 잡는 부분은 의 초반부를 연상케 한다. 또 싱과 어릴 적 여자친구 퐁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뒷배경이 되는 영화 포스터는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주연한 1935년작 뮤지컬 이다. 주성치는 과의 인터뷰에서 이들 장면을 집어넣은 이유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