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웃겼던 게 뭔지 아세요? 제가 끝내고 났을 때 팬클럽 회원 수가 갑자기 확 늘었어요. 그랬는데 딱 하고 나니까 다 탈퇴하시더라고요. (웃음) 에서는 착하고 순수하게 나왔던 사람이 갑자기 남 때리고 욕도 하고 그러니까 다들 놀란 거예요. 제가 오준하랑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팬클럽 홈페이지 게시판에) ‘실망이에요’ 이러면서 탈퇴하시더라고요.”
그는 그 상황을 그냥 웃어넘겼다고 했다. 물론 그 정도로 상처받거나 낙담할 사람이면 인기도의 고저 곡선이 폭풍치는 바다의 물결보다 변덕진 배우의 삶을 살아낼 수조차도 없겠지만, 유난히 조승우는 그런 데에 있어 초연한 젊은 배우였다. 그 초연함을 지탱하는 건 ‘연기란 무엇이며 배우란 무엇인가!’에 대한 단호한 정의 그리고 밀도 높은 자의식이었다. 웃을 때마다 보기 좋은 곡선을 그리며 순하게 내려앉는 눈꼬리는 곧장 유하고 맑은 물소리를 흘리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사람의 본질 또는 의도와 상관없이 발생되는 긍정적 효과, 그뿐일 따름이다.
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보기 원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고 난 뒤에 그는 을 찍고, 자폐증이라는 성격 장애를 가진 스무살 청년()을 선택했다. 이전에 찍었던 그리고 데뷔작인 의 필모그래피를 보아도 외모 삼삼한 젊은 남자배우가 대중에게 매끄럽게 흡입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더듬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나 다 하고, 누구나 익숙한 걸 헤쳐나갈 이유는 없죠. 욕심도 나지 않을 뿐더러 재미도 없어요. 내 희열, 내 기쁨. 내가 좋아서 하는 거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그걸 관객도 같이 좋아해주면 더 좋은 것뿐이죠. 외적인 것을 관리하는 것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걸 포기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저는 배역과 작품에 욕심이 나서 제 의지를 발동시켰을 뿐이에요. 단순히 얘기하면, 하고 나면 그 다음에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80% 이상은 다 청춘멜로고요,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 들어오는 건 80%가 스릴러예요. 끝나니까 80%가 액션이에요. 얼마나 지겨워요. 그런데 굳이 했던 걸 또 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주 단순무식하게 ‘으로 장애우를 연기하고 나면 이미지가 깎여서 어떡해요’ 식으로 질문을 던진다는 건 이미 잔인음험한 연쇄살인범으로 분했던 때부터 무의미해진 셈이다. 연기라는 예술적 행위를 통해 순수한 만족을 구하며, 이 만족감을 가장 풍족히 얻을 수 있는 통로가 영화와 뮤지컬이라 믿으며, 그래서 그 두길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조승우였다. 전략에 따라 이미지를 관리하고 인기를 구가하고 이들로부터 추진력을 받아 CF로 부가수입을 올리고 드라마를 찍어 넓은 연령층에게 인지도를 확산하고 등등과 같은 스텝은 버거울 뿐이다. “가뜩이나 보여줄 것도 많지 않은데, 내 살 깎아먹는 거잖아요. 식상해질 수도 있고. 하나 끝내고 나면 나도 배터리 충전해야 하는데. 그래서… 지금은 너무 달려가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죠. (잠시 간격을 둔 뒤) 예, 맞아요. 너무 달려가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워요.”
그는,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르바이트”라고 생각되는 CF마저도 까다롭게 가리는 편이라고 했다. “제가 좋아하는 건 해요. 근데 내가 안 좋다고 생각하는 건 못하겠어요. 내가 써보고 물건이 영 아닌데 남들에게 거짓말할 순 없잖아요. 예전에 제가 커피 CF를 하나 한 게 있었는데, 그 커피는 진짜 맛있었어요. 그래서 CF 찍고 나서도 캔커피는 꼭 그 회사 걸로 사서 대학로 같은 데서 들고 다녔어요. 커피회사에서 돈을 더 받은 게 아니에요. (웃음)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거니까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CF도 콘티를 따지게 돼요. (잠시 간격을 두고)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이쯤에서 의 출연 경위를 들어보자(사실 이 부분은 인터뷰 초반에 오간 얘기다).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요, 왜, 책을 읽어도 한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게 되는 느낌 있잖아요. 머릿속에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이 시나리오가 그랬어요. 아, 이 장면에서는 이런 감정을 보충하면 되겠다, 이 장면에서는 이런 식으로 연기하면 되겠다. 보면서부터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아직 내 것도 아닌데. 유행을 타지 않는 것이고, 쉽게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자폐증을 표현하는 기술을 찾을 당연한 방법으로 장애우를 위한 학교와 공장들을 다녀온 그는, 예상과 달리 장애우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행동과 습관을 가졌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만약에 저를 모르는 사람이 그곳을 찾으면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저를 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볼 거 같은 거예요. 굳이 내가 꾸미지 않아도 앵글에 잡히면 나는 자폐아가 되겠다. 그래서 초원이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더 중점을 두게 됐죠. 감독님도 그러시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소통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더 즉각적이고 주관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 뿐이에요. 그게 일반적이지 않아 보이니까 사람들이 분류를 하는 거죠. 카메라 앞에서 최대한 자유로워지려고 했어요.” 기자가 시나리오를 읽었다는 말을 듣더니 어땠느냐고 그가 묻는다. 재밌었다는 대답이 썩 와닿지 않았는지 “정말로요?”라고 반문을 던지는데, 솔직한 대답을 원하는 그 억양은 아주 가까운 친구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종류였다.
이제 짐작하겠지만, 말수가 별로 많지 않은 그는 일단 말을 꺼내면 부드럽게 돌려말하는 성격이 아니다. 영화를 선택하는 방식도 그 성격을 어딘가 닮았다. 그는 대중의 욕구와 엇갈려 있는 자기 욕구를 따라 사악한 연쇄살인범이나 깡패나 정신질환을 앓는 자폐아가 되며 “나이테를 키우고 깊어지고 싶은” 배우다. 그리고 그 길을 별 두려움 없이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걸어가는 대담한 사람이다. “내 좋은 이미지를 활용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좋은 물건이 아니면 CF 한 편을 찍는 것도 고사할 만큼 주관이 분명한 그는, 데뷔작 의 이몽룡이 남긴 이미지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인데도” 그 때는 그렇게 빨리 벗고 싶어서 고민이 많았다고, 불과 4년 전 이야기를 아주 먼 과거처럼 회고하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