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의 농담을 따르자면, 로마의 레스토랑에 앉아 있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속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라고 외치면서부터 는 시작되었다 한다. 영화를 보고나면 그 유쾌한 농담이 진담이었음은 분명해진다. 소더버그는 로마라는 배경에다 오션 일당을 어떻게 집어넣을지 고민하다가 조지 놀피의 희곡 (Honor Among Thieves)를 접붙이는 시나리오적 서커스를 감행했다. 태생이 이러니 전편처럼 말끔한 케이퍼 무비(Caper Movie: 가볍고 유쾌한 범죄영화) 후속편은 포기하는 것이 정갈한 선택이다. 일찌감치 결론지어 말하자면 과 는 라스베이거스와 로마처럼 서로 다르다.
는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 일당이 통쾌한 강도질을 성공시킨 지 3년이 지난 시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카지노 보스 테리(앤디 가르시아)에게 마침내 덜미가 잡힌 일당은, 강탈한 돈을 2주 안에 이자까지 듬뿍 쳐서 갚아야 할 처지가 된다. 대니는 테스(줄리아 로버츠)와 코네티컷에서 안정된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 러스티(브래드 피트)는 LA의 패셔너블한 호텔을 경영하기 위해서, 다른 일당들도 각자의 사치스러운 인생을 위해 대부분의 돈을 써버린 상태. 또 다른 도둑질로 빚을 청산하기에 보안이 철저한 미국은 적합하지가 않다는 이유(사실은 무대를 유럽으로 만들기 위한 억지춘향 이유)로 그들은 유럽으로 건너간다. 그러나 오션 일당의 계획은 제대로 풀려지지가 않는다. 프랑스의 대도 나이트 폭스(뱅상 카셀)는 오션 일당이 찜해놓은 먹잇감들을 선수치며 경쟁을 제의하고, 러스티의 옛 연인이자 유로폴 요원인 이사벨(캐서린 제타 존스)은 비상한 머리회전을 자랑하며 이들의 앞길을 막는다. 남겨진 기한은 점점 오션 일당의 목을 죄어오고, 마침내 ‘가정 주부’ 테스마저 앞치마를 걷고 일에 뛰어든다(그러니까 그녀가 바로 ‘오션의 열두 번째 일당’이다).
전편에서 돈과 여자를 강탈당했던 테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는 3년간의 끈질긴 추적끝에 오션 일당들을 찾아낸다.
2주안에 1억 6천만 달러를 이자까지 듬뿍 쳐서 갚아야만 하는 오션 일당은 다시 모여 도둑질을 계획한다.
에서는 플롯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매끈한 ‘미션 임파서블’식 도둑질 과정은 아예 보여지지 않거나 시작도 하기 전에 완벽하게 좌절된다. 사건을 시간순서대로 관객에게 공개하지 않고 몰래 숨겨둔 뒤, 나중에야 플래시백의 힘을 빌려 등을 치는 트릭은 꽤나 변칙(혹은 반칙)적이기도 하다.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 도둑질의 치밀한 계획과 과정을 담아내는 도둑영화)의 탈을 쓴 영화로서는 의아하게도, 우연의 법칙이 플롯의 구멍을 메우는 데 종종 쓰여지기도 한다. 이사벨이 오션 일당이 훔치려 계획 중인 보물의 정체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어차피 다 장난이야”라며 낄낄거리는 소더버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실 이 정도로 막 나가는 허술함이라면, 처음부터 계산된 허술함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않는 것도 불가능한 일일 테다. 에서는 ‘범죄’ 자체가 커다란 맥거핀인 셈이다.
이처럼 가 하이스트 무비의 의무감을 내팽개치기로 마음먹으면서 일사불란한 팀워크의 게임도 자연히 사라졌다. 돈 치들이나 버니 맥을 비롯한 ‘나머지 일당’들은 카메오 수준으로 전락했고, 대신에 일급 스타들의 아우라는 노골적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새로운 쇼의 주인공은 캐서린 제타 존스다. 그는 빨간 가죽 트렌치코트를 입은 유로폴 요원을 연기하며 11명의 사내들이 벌여놓은 쇼를 온전히 자신의 무대로 강탈한다(여기서 소더버그의 여자경찰 페티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러스티와 이사벨은 ‘조지 클루니-제니퍼 로페즈’() 커플을 그대로 차용한 듯도 하다). 물론 상대적으로 초라하긴 하지만 줄리아 로버츠도 자신의 스타성을 패러디하는 훌륭한 코미디 시퀀스를 선사받는다. 거치적거리는 조연들의 역할을 확실히 줄여버린 는 “영화의 역할이 쇠퇴하더라도, 시대에 의해 소비되는 스타는 계속된다”라던 에드거 모랭의 잠언이 전편보다도 더욱 어울리는 ‘스타의 영화’다.
유럽에서의 한탕은 계획대로 풀려가지 않고, 유로폴 요원 이사벨에 의해 모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러스티의 옛여인이자 아름다운 유로폴 요원 이사벨은 비상한 추리력으로 오션 일당의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선천적인 대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유럽의 화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패션지에나 나올 만한 옷을 걸치고 돌아다니는 스타들을 지켜보노라면, 가 마침내 빤짝이는 할리우드식 겉멋의 절정에 도달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거기에다 핸드헬드로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원거리 숏의 급변을 담아내며 종횡무진하는 소더버그의 카메라는 숙달된 장인의 매끈한 과시욕을 짐작게 하고, 타이포그라피마저도 디자이너가 재단해 화면에다 못 박아 놓은 듯 말쑥하다. 70년대 TV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스코어에 재즈, 칸소네와 프렌치 팝의 묘약을 맛갈나게 뿌려놓은 데이비드 홈즈의 선곡들도 키치적인 복고풍의 화려함을 과용한다. 이러니 전편인 을 두고 “쿨하긴 하지만 영혼은 그다지 담겨 있는 것 같지 않다”며 삐죽거리던 의 짐 호버먼도, 영혼을 더 비워가면서까지 더 쿨해지려 노력하는 이 빛나는 사기극에 대해서는 두손 두발 다 들었을 게다. 플롯에 대한 강박을 잊고 일급 스타들의 빛나는 한여름 휴가에 동참하는 것을 그저 즐긴다면, 이 무자비할 정도로 영혼이 없는 속편은 팝콘이 필요없을 만큼 완벽하게 바삭바삭하다. 는 당대의 스타일리스트가 가장 매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낭비한 사례로서 유쾌하게 기억될 영화다.
의 조연과 까메오
+α의 멤버들줄리아 로버츠가 마지막 멤버로 가세하면서 는 자연히 가 되었다. 서너명의 주인공에도 포커스를 제대로 맞추기 힘든 이 영화의 교통정리를 어떻게 했냐고 소더버그에게 물어본다면 "전혀 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올게다. 대신 소더버그는 더 많은 캐릭터들을 집어넣어 극 전체를 왁자지껄한 놀이터처럼 만들었고 에는 12명의 멤버와 캐서린 제타 존스를 제외하고도 흥미진진한 조연과 카메오들이 넘쳐난다. 먼저 프랑스 출신의 대도 ’나이트 폭스’역을 맡은 배우는 뱅상 카셀( )이다. 우리에게는 모니카 벨루치의 남편으로도 잘 알려진 이 성격파 프랑스 배우는 ’괴도 루팡’의 후예임을 자랑하듯 유들유들하고 비열한 도둑역을 유쾌하게 소화해낸다. 맷 데이먼을 실의에 빠뜨리는 대화법을 구사하는 도둑 중계업자는 시리즈에서의 ’해그리드’역과 시리즈에서의 감초 조연으로 잘 알려진 영국배우 로비 콜트레인이 연기하고, 훔쳐낸 보물을 대체할 입체영상을 만들어내는 로만역은 영국식 블랙유머로 가득찬 ’의상도착증 스탠드업 코미디’로 (서구에서는) 유명한 코미디언 에디 이자드가 맡아 특유의 방정맞은 매력으로 극에 양념을 친다. 또한 등의 영화로 낯이 익은 여배우 체리 존스는 극의 마지막 부분에 FBI요원으로 등장해 어이없는 반전의 묘미를 곁들이기도 한다. 물론 가장 재미있는 카메오는 실제 자기자신으로 등장하는 헐리우드 스타 브루스 윌리스와 토퍼 그레이스다. 브루스 윌리스는 카메오 이상의 분량을 맡아 영화속 가장 포복절도할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기여를 한다. 토퍼 그레이스( )는 에서도 러스티(브래드 피트)에게 포커를 배우는 젊은 헐리우드 스타로 등장해 무심한 자기 패러디를 감행했는데, 에서도 호텔방에서 난리를 치는 장발의 젊은 헐리우드 스타로 잠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