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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인물로 풀어본 영화계 결산
2004-12-28

칸·베니스·베를린 휩쓸고 ‘해피엔드’

올 한해 한국 영화계엔 좋은 소식이 유달리 많았다. 아울러 영화인들의 사회 참여도 여느 해보다 활발했다. 2004년의 영화계를 영화 제목과 인물로 풀어본다.

불가능을 넘어 꿈을 이루다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박찬욱=박찬욱은 멋있다. 관객이 불편해할 이야기를 타협 없이 밀어붙인 〈올드 보이〉로 300만명 관객을 동원하더니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까지 거머쥐었다. 그것만으로도 멋있는데 파병 반대, 대마초 합법화 등 사회적 발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출연한 자동차 광고처럼, 박찬욱은 영화 감독을 넘어 ‘창작으로 원하는 걸 성취한 인물’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의 성취와 활동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드레날린을 전파한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새해에도 ‘아드레날린 드라이브’가 쾌주하길.

값진 성과 몰라주더라도…

‘김의 전쟁’ 김기덕=김기덕은 올해 세계 3대 영화제 중 칸을 뺀 베니스, 베를린 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이쯤 되면 성취도에서 칸의 스타 박찬욱과 크게 차이나지 않을 텐데 국내에서 그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수상작 〈사마리아〉 〈빈집〉 두편 합친 관객이 10만명이 안 된다. 지난해부터 김기덕 프로덕션을 차려 제작을 겸하는 그는 국내 배급도 해외 수출하듯 흥행결과에 관계없이 일정액 받고 판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다큐맨 드디어 영웅으로

‘리틀 빅 히어로’ 김동원=다큐멘터리 집단 ‘푸른 영상’ 대표 김동원 감독의 덩치는 작지 않다. 중간 이상의 키에 배도 나왔다. 그러나 평균 제작비가 수십억원인 영화판에서 1억원도 안 되는 돈으로 독립영화, 그것도 다큐멘터리를 찍는 그는 여전히 ‘리틀 맨’이다. 그가 10년의 세월을 바쳐 비전향 장기수들과 함께 지내며 찍은 다큐멘터리 〈송환〉은 국내 다큐멘터리 사상 최대인 3만명 관객을 동원했고 여러 매체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혔다. 그는 또 이 영화로 한국 영화가 한번도 수상한 적 없는 선댄스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받으면서 ‘빅 히어로’가 됐다.

파워1위 회복 ‘절치부심’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강우석=강우석 감독은 〈실미도〉(1100만명)로 〈태극기 휘날리며〉(1170만명)보다 먼저 1천만명 고지를 돌파했지만, 올해가 최고의 시련기였다. 그가 이끄는 시네마서비스의 자금난에 더해, 대기업과의 프리머스 극장 경영권 분쟁에서 다른 영화인들의 냉대를 받았다. ‘대기업의 전횡으로부터 충무로를 지켜왔다’는 나름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은 것. 6개월간 침묵하던 그는 최근 플래너스에서 독립한 시네마서비스와 곧 개봉할 〈공공의 적 2〉를 ‘가슴에 돋는 칼’로 삼아 충무로 ‘파워 1위’를 지키기 위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8할대 타율 ‘나홀로 독주’

‘오 해피데이’ 차승재=싸이더스 차승재 대표의 올해 타율은 8할대에 이른다. 〈말죽거리 잔혹사〉 305만명, 〈범죄의 재구성〉 230만명, 〈늑대의 유혹〉 230만명, 〈내 머리 속의 지우개〉 255만명으로 모두 크게 흑자를 냈다. 단 한편 〈슈퍼스타 감사용〉이 85만명으로 손익분기점을 밑돌았다. 1천만명 넘는 〈실미도〉 〈태극기…〉 빼고 돈 번 영화가 많지 않은 올해 차승재는 독주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점쟁이도 못 맞히는 게 영화의 성패. 가장 많은 돈을 들여 최근 개봉한 〈역도산〉의 성적이 부진하다. 12월말부터 말을 바꿔야 할지 모른다. ‘행복 끝, 걱정 시작.’

꽃미남 이긴 50대 청춘

‘불타는 청춘’ 백윤식=지금은 은퇴한 김기덕(70) 감독이 〈불타는 청춘〉을 만들었던 1966년에 백윤식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2학년생, 한창 청춘이었다. 그러나 배우로서 그의 청춘은 〈지구를 지켜라〉가 개봉한 지난해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범죄의 재구성〉까지 출연한 올해 그는 여러 조사에서 장동건, 원빈 같은 꽃미남 스타, 최민식, 송강호 같은 연기파 배우들 다 제치고 최고의 남자 배우로 꼽혀 50대 중반 주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혔다. 새해엔 10·26 사건을 다룬 〈그때 그사람(들)〉의 주연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으로 관객과 만난다.

메가폰 들고 사회에 외침

‘빵과 장미’ 오기민=올해 영화인들의 사회 참여는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스크린쿼터 지키기는 물론 민주노동당 지지, 이라크 파병 반대, 대마초 합법화 운동에 영화인들이 나섰고 그 선두에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가 있었다. 〈여고괴담〉 〈고양이를 부탁해〉 〈장화, 홍련〉을 제작한 그는 올 한해 제작자이기보다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에서 파업을 선동하는 노동운동가에 가까웠다. 최근 한 감독에게 영화 제작 건으로 전화했더니, 받자마자 그 감독이 한 말은 “무슨 건인지 말씀만 하시면 서명할게요”였다. 새해에는 그가 영화 제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회가 평안하길.

대마초 합법화 앞장서다

‘래리 플린트’ 김부선=〈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는 이 잡지 유머난에 미국의 저명한 종교 지도자가 어릴 때 어머니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정도가 심한 농담을 실어 재판에 회부됐다. 그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대법원까지 이 사건을 끌고갔던 과정은 밀로스 포먼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한국에선 래리 플린트의 주장만큼이나 급진적으로 여겨질 법한 대마초 합법화 운동에 영화배우 김부선이 앞장섰다. 대마초로 구속된 전력을 감추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그의 치열함에 감화돼 여러 문화인들이 가세하면서 대마초 합법화 운동의 반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체모·성기 노출 심의허용

‘무릎과 무릎 사이’ 김수용=지금까지 한국에서 상영된 영화는 ‘무릎과 무릎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를 개봉할 수 없게 했고, 그건 실질적인 검열이었다. 헌법재판소가 ‘영화 사전검열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뒤에도 체모가 보이면 안 된다는 원칙은 5년 동안 계속됐다. 지난 8월 영상물등급위원회 김수용 위원장은 등급위 회의를 통해 프랑스 영화 〈팻 걸〉의 등급 심의에서 마침내 체모와 성기 노출을 허용했다.

‘어린배우’ 20∼30대 넘다

‘열일곱살의 쿠데타’ 문근영=이십대와 삼십대에 걸쳐 있던 최고 인기 여배우의 연령대를 단숨에 십대로 끌어내린 주인공. 그가 주연한 〈어린 신부〉는 전국 300만명의 관객동원을 동원하며 올해 흥행기록 3위를 기록했고, 문근영은 70년대 임예진 이후 최고의 10대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여고생 시집가기〉 〈제니, 주노〉등 ‘어린 신부’를 소재로 한 영화제작 열풍을 일으켰다. 또한 문근영은 모델 출연료 3억원을 소아암환자돕기에 기부하는 등 ‘착한 소녀’로 성인과 십대 관객을 아우르며 사랑을 받았다. 현재 촬영중인 〈댄서의 순정〉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지만 첫사랑에 가슴 떨려하는 열아홉 연변처녀로 분한다.

한겨레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