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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열쇠말로 돌아본 2004 방송계
2004-12-28

안방극장은 올 한해도 한국인들의 가장 가까운 쉼터였다. 팍팍한 일상에 치인 시민들은 하루 평균 3시간씩 티브이에 눈과 귀를 맡겼다. 수많은 프로그램과 연예스타, 방송인들이 안방극장을 명멸했고, 가장 압도적인 장르인 드라마를 중심으로 숱한 뉴스가 양산됐다. 일본 열도의 열기를 흡수하며 태풍으로 번진 ‘한류 열풍’ 속에 방송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뒤안의 각축 또한 어느 때보다 거셌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는 방송을 시민정치의 한가운데 서게 했다. 콘텐츠와 관련한 방송계의 주요 뉴스를 10개의 열쇠말로 정리해 본다.

드라마 ‘캔디+신데렐라’ 열풍

캔디렐라=올 한해 정규 프로그램 시청률 10강은 모두 드라마가 차지했다. 그 드라마를 이끈 핵심 모티프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였다. ‘왕자’를 욕망하는 신데렐라들은 게다가 한결같이 ‘캔디’였다. 장기불황의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고픈, 그러면서도 ‘왕자’ 앞에서 심리적으로 당당하고 싶은 시청층의 욕구를 반영한 결과였다. 최고 시청률 56.3%를 기록한 <파리의 연인>은 그 정점을 찍으며, ‘캔디렐라’로 불리는 사회적 신드롬을 창출했다. 이런 물결을 거스르는 <장길산>과 <영웅시대> 등의 고답적 시대극은 부진에 시달렸다. <아일랜드> <단팥빵> <반올림> 등은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마니아층을 결집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한류, 일본열도마저 휩쓸다

욘사마=드라마의 힘은 나라 밖에서도 거칠 것이 없었다. 한류 드라마는 중국과 동남아를 돌아 마침내 일본 열도마저 휩쓸었다. <엔에이치케이>를 통해 <겨울연가>가 방영된 이래 한국 드라마의 낭만적 감수성은 일본 중·장년층의 심금을 울리며 한류 열기의 도약을 이끌었다. <겨울연가>의 드라마적 매력에서 시작된 일본 내 한류 바람은 나아가 ‘욘사마’ 배용준을 필두로 한 한류 스타 개인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팬덤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한류스타를 내세워 처음부터 해외 수출을 겨냥한 드라마의 사전전작이 시도되는 등 드라마 제작과 유통 환경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연예기획사와 독립제작사가 공동제작에 나선 <슬픈 연가>는 제작완료 전에 48억원에 해외시장에 팔렸다. 방송사가 주도하던 드라마 제작에 스타파워를 앞세운 연예기획사와 외주제작사의 입김이 거세질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병역비리 연예계를 울리고

병풍=차기 한류스타로 손꼽히는 송승헌의 병역 비리 사건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부 운동선수들의 신장 질환을 이용한 병역 면제 비리가 드러나면서, 송승헌을 비롯해 장혁, 한재석 등 남자 연예인들한테도 그 불똥이 튀었다. 드라마 <해신> 출연을 예정하고 있던 한재석은 방송사쪽의 발빠른 대응으로 큰 무리 없이 입대절차를 밟았으나, 송승헌의 경우 드라마 <슬픈 연가> 출연을 둘러싸고 긴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의원까지 가담해 드라마 촬영 뒤 군에 입대하도록 힘을 실어줬으나,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맞고 지난달 16일 현역 복무를 시작했다. 방송계 일각에서 공공연히 돌던 불법적인 병역 면제 수법 등이 완전히 퇴출되는 계기가 돼, 내년엔 원빈, 소지섭 등 많은 남자 배우들이 군 복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스타 복귀·변신 줄이어

고현정=드라마 붐 속, 왕년의 스타가 컴백하는 한편 음반 시장 불황에 따라 연기자로 변신하는 가수들도 대거 등장했다. 고현정은 내년 초 방송될 드라마 <봄날>을 통해 연예계 복귀를 선언했다. 지난 1995년 <모래시계>를 끝으로 재벌3세와 결혼하면서 연예계를 떠났다. 지난해 11월 이혼의 아픔을 겪은 지 1년 만에 티브이 드라마를 통한 연예계 복귀를 선언했고, 여러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했다. 가수들도 방송 드라마를 통한 연기자 변신에 힘쓴 한 해였다. 철저한 준비 끝에 성공적인 변신에 이른 이들이 있는 반면, 너도나도 연기자 변신 행렬에 끼어 쓴 맛을 본 이들도 있었다. 전자가 비, 유진 등이었다면, 후자는 박정아, 성유리였다. 가수들이 이처럼 연기에 열을 올린 것은 가요시장의 전반적 침체가 주요한 이유였다는 분석이다.

코미디, 경제불황 타고 ‘활짝’

스탠드업=웃음이 많이 고픈 한 해였던가보다. 덕분에 코미디 프로가 크게 떴다. 다시 코미디의 시대가 온다는 말도 떠돈다. 수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온 <개그콘서트>에 이어, <폭소클럽>과 <웃찾사>가 어렵게 살림 사는 이들을 웃겼다. 특징은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된 스탠드업 코미디가 새로운 웃음을 선사했다는 것. 콩트보다 훨씬 간결하면서 강렬한 짧은 형식의 코미디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갔다. 긴 시간 웃음에 목말라온 시청자들은 작고 짧은 자극에도 폭소를 터뜨렸다. 블랑카, 화니와 지니, 안어벙, 리마리오, 윤택 등 새 코미디 스타들이 대거 등장했다. “사장님 나빠요” “그때 그때 달라요” “쌩뚱맞죠” “뭐야” “마데 전자” 등 촌철살인의 맛 깊은 유행어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오락물 하향평준화를 막아라

!느낌표=연예인들의 잡담이 밤 시간대 텔레비전을 점령했다. 방송사를 가리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나와 판에 박은 듯한 수다로 밤을 지새웠다. <야심만만> <해피투게더> <상상플러스> <놀러와> <아이엠> <즐겨찾기> 등 제목도 채널도 달랐지만, 쌍둥이처럼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청률이 잘 나오니 서로 베끼고 닮아가며 하향 평준화의 길에 앞다퉈 줄섰다. 에스비에스가 주도하는 다툼이었다. 신동엽, 유재석, 강호동 등 나오는 이들도 겹치기로 바빴을 터다. 특정 연예인 의존도는 끝없이 커지고 있다. 시청률 경쟁 와중에 성우 장정진씨가 숨지는 참극도 빚어졌다. 막판에 가 7개월만에 다시 등장했다. ‘눈을 떠요’ 등 새로운 꼭지를 들고 나와 신선한 바람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비타민> <스펀지> 등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도 적잖이 성공하면서 오락프로의 하향 평준화를 저지하고 있다.

중복중계 논란…채널선택권 위축

판박이=방송사의 연말 각종 시상식에 대한 폐지 요구가 잇따랐다. 이달초 연예기획사들 모임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가 연말 가요시상식 폐지를 요구하며 불참을 선언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도 자사 이기주의에 따라 진행되는 각종 시상식의 폐지를 요구했다. 서로 다를 바 없는 시상식들이 각 방송사에 대한 기여도와 이해관계에 따라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된다는 지적이다. 이런 방송사간 담합성 경쟁에 대한 비판은 지난 8월 올림픽 중계방송에서도 불거졌다. 방송위원회의 분석 결과, 지상파 3사가 동시에 같은 경기를 중계한 시간은 하루 3시간 12분에 이르렀고, 2개 채널 이상 중복 중계시간도 하루 4시간30분을 넘었다. 그것도 일부 인기 종목에만 집중된 것이었다.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은 크게 제약됐다.

시사프로, 정치공세에 휘말려

탄핵=시사물과 보도·미디어비평 프로그램 등은 거센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초유의 사태를 공론장으로 끌어들인 방송계의 시도는 ‘편파방송’이라는 야당과 보수신문의 시비에 시달렸다. 한국방송의 14시간 탄핵 생방송과 문화방송 <신강균의 사실은> 등 탄핵 관련 프로그램들은 방송위원회의 심의대상에 올라, 첨예한 논란을 불렀다. 탄핵방송이 ‘불공정’했다는 언론학회 보고서가 작성자의 정치적 성향과 조사방법의 객관성을 둘러싼 신뢰성 논란으로 번져간 가운데, 방송위는 뒤늦게 탄핵방송 전반은 심의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하반기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은 <미디어포커스>와 <시사투나잇> 등이 ‘불공정’하다며 정치공세를 폈다. 문화방송과 에스비에스는 자사 뉴스를 통해 국감에서 제기된 상대방의 의혹을 집중제기하는 ‘보도전쟁’을 펼쳐 ‘방송 사유화’ 논란을 일으켰다. 문화방송 ‘뉴스 보수화’ 논란도 연말 방송가를 달군 화두의 하나다.

다큐 ‘봇물’ …다큐폐인 등장

다큐 페스티벌=9월초 일주일 동안 다큐멘터리만을 종일 방영한 ‘제1회 이비에스 국제다큐페스티벌’은 “방송계를 일주일 동안 공황으로 몰아넣었다”. 99편의 세계 각 나라 작품들이 안방극장을 찾았고, ‘다큐폐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출품작인 <금지된 축구단>에 대한 중국대사관의 방영중지 요청과 대상 수상자인 중국 다큐멘터리스트의 시상식 불참 소동, 통일부의 다큐 내용 일부 삭제 요청 등 잡음이 없잖았음에도, 다큐의 의미와 재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한 대담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뒤이어 한국방송이 3년 기획 끝에 내놓은 문명사 다큐 <도자기>와 문화방송의 창사 특집 <빙하> <중동> 등도 독자적 시각과 빼어난 영상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문화방송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에스비에스 <환경의 역습> 등도 새로운 문제 제기와 높은 성취도로 호응을 끌어냈다. 한국방송 시사다큐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지난 10월30일 출범 1년여만에 퇴장해 아쉬움을 남겼다.

케이블 자체제작영화 첫탄생

동상이몽=불황 여파로 방송산업도 전반적인 침체를 기록했으나, 케이블티브이 쪽만은 예외였다. 케이블과 위성방송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채널사업자(피피)들은 광고수주에서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를 기반으로 대형 복수채널사업자(엠피피)들은 자체 제작의 첫 걸음을 뗐다. 온미디어의 영화채널 <오시엔>은 15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국내 첫 티브이영화 <동상이몽> 6부작을 제작·방영했다. <동상이몽>은 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에서 98개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 중 1위에 오르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 씨제이미디어 계열의 <엠넷>도 이달 말 가수 백지영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자체제작해 내년 초 방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인기 개그맨 신동엽이 <엠넷>의 <슈퍼바이브파티> 엠시를 맡기로 했다 1회만에 그만 두는 등 지상파에 맞선 자체제작의 한계 또한 뚜렷했다.

한겨레 손원제, 김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