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정체성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부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12월22일 이사회를 열고 현 김홍준 집행위원장의 해촉안을 오는 12월30일 열리는 임시총회에서 결정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김홍준 위원장의 해촉안을 이사회에서 결정할 것인가, 총회에서 결정할 것인가에 관한 이날의 논의는 조직위원장인 홍건표 부천시장(한나라당)의 발의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해촉을 주장하는 쪽은 ‘김 위원장이 9월1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으로 부임한 탓에 영화제에 집중할 수 없어 부천영화제가 세계적 영화제로 발돋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근거를 내세웠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김홍준 위원장은 이미 연임이 결정돼 올해 4월부터 3년간의 임기를 새로 보장받았으며, 특별한 허물이 있거나 영화제에 해를 끼친 적이 없고, 정관에 겸임이나 겸직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는 탓에 이번 결정은 뜻밖의 일로 보인다. 이날 이사회에서도 일부 참석자들은 김홍준 현 위원장의 해촉을 무슨 근거로 논의할 수 있냐고 반발했으며, 김 위원장도 소명 발언을 통해 영상원장 일 때문에 영화제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며 사의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은 “현재로서 아무 입장도 밝힐 수 없으며 총회 결정이 난 뒤 상황에 따라 뜻을 보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이사회에서는 정홍택 전 영상자료원장을 신임 집행위원장으로 위촉한다는 안건도 함께 논의됐으나, 김 위원장 해촉안과 함께 총회에서 결정하게 됐다.
김홍준 위원장이 부천영화제에서 물러나게 될지 여부는 30일의 임시총회에서 최종 결론이 나겠지만, 영화계에서는 이번 이사회의 안건 상정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부천영화제의 탄생 때부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판타스틱영화제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힘을 기울여 세계적인 영화제로 부각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세운 김홍준 집행위원장을 강제 퇴진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다. 집행위원장의 퍼스낼리티가 상당히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는 영화제의 세계를 고려한다면, 부천영화제의 위상이 크게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인들은 광주영화제의 경우에서처럼, 전문가의 힘으로 일궈놓은 영화제의 토양이 지자체의 압력에 의해 손상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부천영화제의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김홍준 집행위원장은 강직한 운영 스타일 때문에 특권을 요구하는 일부 지역 인사와 충돌이 있었다”며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했다. 영화계는 12월30일 열릴 임시총회의 결론이 영화제의 진정한 주인인 관객을 고려한 것일지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