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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장 뤽 고다르가 선택한 영화사의 순간들, 퐁피두 센터에서 상영

장 뤽 고다르는 1998년 <영화의 역사(들)>라는 제목 아래 20세기 인류의 역사와 영화, 문학, 미술, 음악 그리고 이미지에 대한 철학적이고 성찰적인 고민을 담은 독창적이고 복합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연작 비디오영화와 책의 모습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전체 상영시간이 5시간14분에 이르는 이 작품의 출발점은 대략 1978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즉 고다르는 1978년 몬트리올에서 연속 강의를 하는데, 이 강의 내용 중 일부를 수록한 책 <영화의 진실한 역사를 위한 서설>에서 ‘참된’ 영화의 역사란 일러스트레이션이 삽입된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와 사운드들로 이루어진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영화사 책에서 보는 영화사의 경직성과 한계를 인식한 고다르는 새로운 영화사 쓰기에 대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새로운 영화사 쓰기라는 고다르의 기나긴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998년 <영화의 역사(들)>를 세상에 내놓은 이후 그는 이 역사(들)에서 아직도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올해 12월9일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는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 그 선택된 순간들>의 상영이 시작되었다. 98년 작품과는 달리 35mm 필름에 담긴 이번 작품의 길이는 84분이다. 제목에서 이 영화가 <영화의 역사(들)>의 스탠더드 필름 버전으로 전작의 요약본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 영화의 원재료가 98년의 <영화의 역사(들)>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고다르가 선택한 새로운 영화사의 순간들은 이전 작품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재편집해서 단지 필름에 옮겨놓은 것이 아니다. 고다르의 표현대로 이 영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력 넘치는’ 영화인 동시에 영화사이다.

고다르의 영화사는 경직된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고고학적인 또는 생물학적이라고 부르는 방식을 통해 영화와 영화사에 대한 단성적인 기록을 넘어서는 복수의 성찰적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영화의 역사(들), 그 선택된 순간들>에서 고다르가 추구하는 것은 영화 이미지를 포함한 모든 이미지에 대한 주관적 사고와 성찰적 반응의 가치이다. 그가 추구하는 주관적 사고와 성찰적 반응, 그리고 새로운 형식과 실험을 통해서 영화와 영화사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고다르의 영화사는 기억을 축으로 하는 영화사이다. 서로 다른 기원과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있는 두 이미지를 통한 연상은 새로운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서로 다른 이미지들의 몽타주가 고다르의 기억 또는 각기 다른 관객의 기억 속에서 조합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의미는 하나로 해석될 수 없다. “이것은 정당한 이미지가 아니라 단지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Ce n’est pas une image juste, c’est juste une image). 현실을 보여주는 순수한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역사를 말해주는 절대적인 영화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도 영화사도 기억 속의 몽타주를 통해서만 진정한 이미지와 역사를 얻을 수 있다.

이미 칠순을 넘긴 고다르는 영화사 100년 가운데 절반 이상을 보낸 사람이다. 고다르의 모든 작품에는 영화와 그 역사, 그리고 인간과 그 역사에 대한 사고와 비평이 스며 있다. 올해 칸영화제를 통해 관객을 만난 고다르의 신작 <우리의 음악>(Notre Musique) 또한 이와 같은 고다르의 지향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고다르가 <영화의 역사(들)>라는 연작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1986년의 일이다. 이후 그는 끊임없는 리모델링 작업을 통해 계속해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우리에게 완성본으로 알려진 것은 앞에서 말한 1998년 버전이다. 하지만 고다르의 리모델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35mm 필름에 담긴 84분 길이의 <영화의 역사(들), 그 선택된 순간들>이 끝나지 않은 고다르의 영화와 영화사에 대한 유기체적 리모델링의 새로운 결과물이다. 영화와 예술의 본질과 역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고다르가 던지는 질문은 ‘영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삶이란 무엇인가’이다.

고다르에게 영화란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예술이다. <영화의 역사(들), 그 선택된 순간들>은 이 시대의 중요한 시네아스트 중 한 사람인 고다르의 영화인생을 통해 이어온 영화와 역사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고몽영화사와 퐁피두 센터의 지원에 힘입어 기간과 주제에 있어 20세기를 통틀어 손꼽히는 원대한 프로젝트가 친숙한 포맷과 상영시간으로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파리=차민철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