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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도취의 향연, <영원과 하루>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가장 미약한 작품 <영원과 하루>

유럽 예술영화의 쇠망을 느끼게 하며 칸영화제가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에 때를 맞춰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었고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인 거장들의 최근작 두편이 선보였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하나의 선택>으로 보건대 유럽 예술영화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둔하기 짝이 없다.

칸의 1998년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원과 하루>는 수년 동안 내가 앉아 버티며 시청한 대여섯개의 앙겔로풀로스 영화들 중 가장 미약한 작품이다. 시 구절과 제멋대로의 피아노 연주, 해변가 아이의 멋진 이미지, 그리고 병원에 입원할 준비를 하고 있는 유럽을 상징하는 알렉산더 역의 브루노 간츠와 함께 영화가 시작되는데 알렉산더는 진부한 배역에 맞게 위대한 작가이며 꽉 찬 중년에 시한부 질병을 앓고 있다. 그의 지병을 거대한 망상이라고 부르자. 앙겔로풀로스는 알렉산더가 하는 모든 일에 거의 세계사적인 의미를 부여할 테니까. 작가는 깨끗하게 다듬어지고 우스꽝스럽게 조용한 레브라도 개를 딸에게 맡기려고 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날을 시작한다. 그리고 납치되어 부유한 남색자들로 가득 찬 버려진 모텔로 끌려온 알바니아 소년을 구하게 된다. 이제부터 무뚝뚝하고 지겹게도 찰리 채플린의 <키드>가 반복되지만 영화 내내 형사 콜롬보가 입었을 듯한 레인코트를 입고 등을 꾸부정하게 하고 있는 간츠의 배역은 너무 기력이 쇠약해 그저 상냥하게 자신의 꼬마를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노인과 소년, 부자와 가난뱅이, 베푸는 이와 귀염둥이, 문명과 그 불만족의 이 상징적인 공생관계는 알바니아의 수용소가 소개되고 알렉산더가 자신의 영혼지기로 생각하는 유배된 19세기 그리스 시인에 대해 임종의 상념에 젖어 있을 때 일종의 역사적 깊이를 얻게 된다. 하지만 내 참을성을 밀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영화감독의 지루하고 답답한 스타일이다. 연구의 대상이자 유머가 부재한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는 졸립게 하는 일련의 장면들과 거만한 줌의 사용들, 느려터진 화이트아웃들로 특징된다. 그 효과는 거의 없지만 미장센은 어울리지도 않게 매혹적이다. 모든 집들은 건축 잡지의 사진들처럼 불이 밝혀져 있고 병원조차 잘 보존된 지방의 박물관 같은 느낌을 발산하며 도시의 시체 보관실도 유행하는 스테인리스스틸 느낌의 일류 식당처럼 느껴진다.

<영원과 하루>는 드러내놓고 자기도취적이어서 알렉산더가 죽은 아내의 간지러운 러브레터들에 심취해있을 때조차 쉽게 이게 앙겔로풀로스가 자신에게 쓴 편지려니 싶어진다. 뭐가 더 터무니없을까? 알렉산더가 자기 개를 맡기기 위해 충실한 하인 아들의 가짜 민속결혼식에 방해가 되는 장면일까 아니면 길거리의 아이들이 죽은 동지의 어쭙잖은 소유물을 태우는 장면에서 오보에가 들려오고 카메라가 냉혹하게 움직일 때일까? 추상적 비표현주의자라고 불릴 만한 앙겔로풀로스에겐 인물들을 상상해내거나 배우들을 지도할 특정한 능력이 없다. <영원과 하루>에 좀더 위상있는 배우들이 나왔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뻣뻣하고 빈약하며 거만하고 한순간 그 자신의 효과에 취했다가 허위 철학에 눌려버린 완전히 예술영화판 <보이지 않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앙겔로풀로스의 단점이 있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율리시즈의 시선>은 그 어떤 웅장한 무관심을 받았다. 아니 적어도 2번가에 있는 거의 버려진 황량한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의 빈 극장에서는 보여줄 만한 그런 영화였다. 그걸 봤다면 누구나 앙겔로풀로스가 마지막 유럽 예술영화를 만들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링컨센터의 위상 속에서 개봉되어 평범한 머천트와 아이보리의 공격적인 광고에 힘입고 있는 <영원과 하루>는 그런 분위기의 기이한 요약에 더 가깝다.

“나 왜 유배 속에 삶을 살아왔나?”, “왜 우린 사랑할 줄 모르고 있었나” 따위의 영원한 질문들을 뻔뻔스럽게 헤대며 앙겔로풀로스는 잉마르 베리만의 무거운 망토를 걸치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도덕적 고통을 머리에 쓰고 미클로시 얀초의 형식주의를 사용하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비유적인 풍경을 찾다가 결국 바닷가에서 음치에다 뻣뻣하게 춤을 춰대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단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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