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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맞선 노동자의 핏빛 투쟁, <레지던트 이블2>

<레지던트 이블2>라는 텍스트는 무책임한 대기업 엄브렐라와 살아남은 노동자-시민들의 대결을 얼개로 삼고 있다. ‘이상한 좀비나라의 앨리스’(밀라 요보비치)와 함께 끝까지 남아 좀비와 엄브렐라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은 질과 카를로스인데, 앨리스는 엄브렐라의 직원이면서 실험대상으로 이용되었던 노동자이고, 카를로스 역시 엄브렐라 소속의 보안요원이며, 질은 라쿤시 경찰국 소속의 ‘공무원 노동자’다. 이 셋은 모두 애초에 기업에 소속되었거나 기업을 지키는 일을 했지만, 기업으로부터 이용만 당한 뒤에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을 버리고 이동하는 엄브렐라 헬기를 바라보면서 카를로스가 “저들은 우리를 이용만 했어. 이제는 나를 위해 싸우겠어”라고 말할 때, 그는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진보적 자각을 표출하고 있다. 거대 다국적 기업(우산 펼치듯 뻗어나가는 엄브렐라)의 위험한 확장과 도덕적 해이(바이러스 확산)에 대해 정부나 시당국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반면, 이들에 맞서 싸우는 전사들은 오직 노동자들이다. 이 영화는 자신들의 피를 빨아먹는 대기업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승리의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엄브렐라가 만들어낸 변종괴물들인 네메시스와 좀비는 상징적이다. 제우스의 구애를 피해 거위로 변신했으나 백조로 몸을 바꾼 제우스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가 그에게 강제로 교접당해 알을 낳은 존재인 신화 속의 네메시스(Nemesis)는 전편에서 앨리스와 함께 살아남았다가 엄브렐라에 의한 강제 바이러스 실험(강제교접)을 거쳐 괴물로 바뀐(변신) 매트의 이름이 된다. 이후 네메시스가 앨리스와 치르는 대결은 노동자 대 노동자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기업이 즐겨 사용하는 노동자 분열전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싸움 도중 의식을 회복한 네메시스가 앨리스와 연대하여 엄브렐라를 향해 돌격함으로써 한때 사용자 편에 섰던 노동자는 자신의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 피를 빨고 인육을 먹는 좀비(licker)는 기업의 탐욕과 함께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상징한다. 전편에서 최초의 좀비가 엄브렐라의 연구소 ‘하이브’의 직원들이었고, 라쿤 시티 전체가 엄브렐라를 중심으로 한 ‘기업도시’라는 점에서 볼 때, 이들 좀비들은 엄브렐라에 의해 피를 빨렸다가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엄브렐라를 대신해 피를 빨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기업에 의해 피를 빨리는 노동자들이 동시에 기업을 위해 서로의 피를 빨 수밖에 없는 처참하고 서글픈 오늘날 노동자들의 현실은 영화에서 좀비들에 의해 공포로 재현된다.

엄브렐라사와 끝까지 ‘맞장’을 뜨는 앨리스, 네메시스, 카를로스가 엄브렐라 소속 노동자들이라는 점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엄브렐라가 생산하고 키워낸 인간들이 그것을 전복시킨다는 내러티브는 자본주의의 탐욕이 결국 체제 몰락의 자체 원인이 됨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제국이 가르치는 지식을 배우고 익힌 제3세계 지식인들이 바로 그 지식으로 제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탈식민주의적 ‘다시 쓰기’ 전략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미 에드워드 사이드를 통해 제국이 생산한 지식체계가 거꾸로 어떻게 제국을 파괴하는 데 이용되는지 알고 있다.

제국의 기술을 이용하여 제국에 다시 대항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사회의 비주류들이다. 엄브렐라 제국에 대항해 싸우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백인여성, 히스패닉계 남성, 흑인시민이라는 설정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다. 이에 반해, 엄브렐라의 최고 책임자와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과학자는 앵글로 색슨계 백인남성이다. 투쟁을 이끄는 전사가 여성인 앨리스인 것은 탐욕스런 대기업이 남성적 코드를 지닌 것과 대비된다. 엄브렐라의 본사는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남근 이미지며, 엄브렐라가 비밀리에 대지(여성)를 뚫고 들어가 만든 하이브(남성)에서 생산된 T-바이러스가 온 도시로 분출되고 확산되는 것은 엄브렐라라는 남근에서 배출된 정액의 역할이다.

대기업이 국가를 대신해 생산뿐 아니라 교육, 의료까지 담당하려는 ‘기업도시계획’이 논의되는 한국 역시 라쿤 시티의 재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민이 맡긴 권력을 기업에 전임하는 체제는 이미 심각한 재앙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권력 확장의 집적체이자 그 상징이기도 한 ‘기업도시론’이야말로 이 영화의 부제인 ‘묵시록’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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