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라는 건전한 수식어를 빼버리면 이번에 출간된 세권의 만화잡지는 제각각 살아 있는 날것의 상상력을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제안이다. 올해로 두 번째인 부천만화정보센터의 우수만화동인지 지원사업은 여러 번의 심사를 거쳐 최종 지원작을 선정한다. 이번에는 상명대 극화창작 소모임 ‘어사모’,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만화동아리 ‘안아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창작반 2기를 기반으로 한 ‘매운맛’까지 총 3개 동아리의 회지가 지원을 받아 완성되었다. 이들 세 회지는 각자 다른 출신성분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기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특별히 어느 하나를 골라내지 못할 만큼 닮아 있다. 개성은 출신성분이 부여한 화인처럼 작품집의 여러 페이지에 남아 있다. <더 좋은 방향>이 보여준 실험적이고 몽환적인 작업의 편린들이나 이 보여준 사회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매운맛>이 보여준 장르만화의 초보적 모양새는 그 출신을 짐작게 하는 묘한 재미가 있다.
세 작품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희망은 이야기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젊은 작가들이나 지망생들이 범하기 쉬운 ‘이야기’가 없는 ‘멋진 그림’의 오류가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아 반가웠다. 낙서나 아방가르드한 화면, 해체적 전개, 극도의 앵글연출 등은 젊은 작가들의 실험만화에서 곧잘 발견되는 특징인데 이 세권의 작품집에서는 이런 시도들이 많이 자제되고 있다. 대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특한 연출로 풀어내는 사례들이 눈에 띄었다. 이홍민의 <Mommy>는 마치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작된 미묘한 애니메이션과 같은 작화로 어머니와 아들의 단절된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 손정택의 <손잡고>는 서울올림픽을 위해 철거가 진행되던 달동네를 배경으로 어린 화자를 등장시켜 권투선수 봉태에 대한 오해와 그 오해가 풀리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묘사했다. 이야기가 점점 살아나고 있어 흥미로웠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세 권 모두 전문 출판사의 손을 빌려 세련되게 출판되었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기획이나 작품의 균질성 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왜 만화책을 만드는지, 이 만화책을 누가 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우선 1권의 작품집을 만들기에 급급했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러한 문제는 ‘우수만화동인지’ 지원사업의 태생적 한계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좋다. 젊고 새로운 피는 만화의 활력이 되기 때문이다. 만화계가 어려워서인지 유독 만화에 대해 이야기한 만화들도 많았는데, 박해성의 <입시 칸만화 대공략>이나 이홍수의 , 박준석의 <편의점 26시>가 만화를 다룬 만화였다. 어려운 만화계를 입소문이나 실경험을 통해 느꼈음직한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넉넉한 낙관이다. 적어도 젊은 만화작가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