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지금 안방극장은...‘캔디’ 전성시대

요즘 드라마 여주인공들 외로워도 슬퍼도 당당·명랑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12월의 열대야〉에서 오영심(엄정화)은 잘난 시집 식구들의 구박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힘들고 지칠 때면 그는 〈빙글빙글〉을 부르며 자신을 추스른다. 한국방송 월화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은채(임수정)는 어떤 일에도 쉽게 놀라지 않는 무심한 표정에 때로 소주병에 빨대를 꽂고 마시는 엉뚱함을 보인다. 지난 18일 끝난 한국방송 수목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미영(오연수)은 이혼의 아픔을 이겨내고 사업과 사랑에 모두 당당히 성공한다.

대장금 이후 ‘활짝’

요즘 한국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들은 외로워도 슬퍼도 결코 울지 않는다. 그들이 드라마 속 세상을 헤쳐나가는 방식은 한결같이 밝고 명랑하고 씩씩하다. 그들은 웃으면서 푸른 들을 달려가는 우리 시대의 ‘캔디’들이다.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캔디로 틀지어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가장 선호되는 드라마 주연 캐릭터는 청순가련형이었다. 〈허준〉의 예진아씨(황수정)와 〈가을동화〉의 은서(송혜교), 〈겨울연가〉의 유진(최지우)을 돌아보면 된다. 물론 때로 최진실이나 장나라처럼 데뷔부터 캔디형 캐릭터로 각광받았던 배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건 주로 개인의 귀여운 이미지에 기댄 예외적 변주의 성격이 강했다.

캔디 전성시대를 활짝 연 드라마가 〈대장금〉이라는 데는 이론이 많지 않다. 임금 위세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온갖 난관에도 굴복하지 않는 장금이(이영애)의 매력이 빛을 발한 이래, 한국 드라마는 온통 캔디들로 넘쳐난다. 〈낙랑 18세〉의 한지혜와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명세빈, 〈풀하우스〉의 송혜교, 〈황태자의 첫사랑〉의 성유리 등이 하나같이 캔디의 꿋꿋함과 귀여움으로 무장한 채 안방극장을 찾았다. ‘캔디렐라’(캔디+신데렐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던 〈파리의 연인〉의 김정은이 그 정점에 올라 있다. 비련의 여주인공을 내세운 신파적 멜로는 〈천국의 계단〉과 〈애정의 조건〉을 겨우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캔디의 범람은 대중적 감수성의 변화에서 일차적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아일랜드〉의 인정옥 작가는 “캔디 유형의 귀여움이 요즘 시청자에겐 가까움과 일상성의 느낌을 동시에 안긴다”며 “매력의 코드가 달라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파리의 연인〉이 극적으로 보여주듯, 캔디 캐릭터가 신데렐라에 덧씌워진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인 작가는 “여리고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던 예전 신데렐라와 달리, 캔디형 신데렐라는 재벌 앞에서 좀 더 당당한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심리적 만족을 안기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나아가 이런 변화한 감수성의 배후엔 드라마 주시청층인 여성들의 미묘한 사회적 위치가 놓여 있다. 김영찬 한국외국어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여성 수용자들은 여성이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의식과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현실 사이에 놓여 있다”며 “이 때문에 당당하고 밝은 캔디형 여주인공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판타지를 충족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송교섭 우석대 겸임교수(영화학과)도 “요즘 가장 어려운 계층이랄 할 여성들이 찌든 현실을 명랑 코드를 통해 위안받고 싶어하는 욕망의 반영”이라고 지적했다.

“매력코드 달라진 느낌”

바로 거기서 캔디의 한계를 끌어내는 목소리도 있다. “캔디 드라마에서 여성의 당당함은 행위가 아니라 성격으로 드러난다”(인정옥)거나 “캔디형 주인공들이 결국은 재벌의 품에 안기거나 남자에 기대 결혼으로 끝난다”(송교섭)는 것이다. 과연 돌아보면, 강태영(김정은)은 끝내 신데렐라의 꿈을 벗어나지 못하고, 미영(오연수)은 매력남의 두번째 프러포즈에 기꺼이 응한다. 우리 시대 캔디들은 여전히 현실에선 채울 수 없는 욕망의 판타지에 기꺼이 포박돼 있으며, 전보다 한층 밝고 씩씩하되, 그건 아직 겉멋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