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die de l’innocence 2000년
감독 라울 루이즈
출연 이자벨 위페르
EBS 11월20일(토) 밤 12시
남미 출신 감독들은 의식적으로 할리우드영화와 비교되는 작품을 만들곤 했다.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 등이 그랬듯 전형적이고 상업적 내러티브에서 벗어난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칠레 태생인 라울 루이즈 역시 비슷한 예를 제공하고 있다. 루이즈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는 <다시 얻은 시간>(1999)으로, 이 영화는 프루스트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것이다. 과거가 현재와 뒤섞이고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교차하는 <다시 얻은 시간>은 루이즈 감독이 독창적이고 몽상적 내러티브를 창조하는 연출자임을 입증한 바 있다.
<두 어머니의 아들>에서 아홉살이 된 카미유는 어느 날 부모 앞에서 선언한다. “오랫동안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은 제 어머니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어머니를 찾으러 가겠습니다.” 엄마 아리안은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질 못한다. 그래서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한 거니?”라고 묻자, 카미유는 오히려 반문한다. “당신은 제가 태어난 시간을 아시나요?”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 앞에서 카미유는 디지털카메라를 꺼내든다. 1년 전 디지털카메라를 선물받은 카미유는 온 집안을 구석구석 찍기 시작한 것. 그리고 재생화면을 보다가 우연히 한 여자의 얼굴을 발견한다. 카미유는 그녀가 원래의 생모이며 자신을 보러 온 것이라는 생각을 굳힌다. 라울 루이즈 감독은 영화에 대해 “종말론의 영화”라고 지칭한 적 있다. 태생의 문제를 놓고 벌이는 해프닝을 담은 <두 어머니의 아들>은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사회의 가족에 관한 예리한 풍자를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촬영에 참여한 배우들에 따르면 감독은 그때그때 시나리오의 내용을 바꾸고 심지어 배우에게 내용에 관해 거짓말을 하면서 촬영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제작과정을 거쳐 영화 속 복잡한 심리극은 좀더 정교한 것으로 빚어졌다. 1970년대에 정치적 이유로 망명길에 오른 뒤 라울 루이즈 감독은 망명작가로서 유럽 등에서 활동을 지속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 이론 진영과 교류를 하고 <범죄의 계보> 등 실험적 작품이 각종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라울 루이즈 감독은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최근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라울 루이즈 감독은 여전히 흥미로운 작품을 통해 <두 어머니의 아들>에서 볼 수 있듯 디지털 시대, 새로운 영화의 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