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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시나리오 워크숍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 출간
2004-11-17

시나리오 작가짓 몇년 사이, 장쾌한 일필휘지의 경험은 손가락 한둘로 겨우 꼽을 정도다. 열에 아홉은 쓰다 막힌다. 막히면 뚫어야 하는데, 거대하게 응집된 덩어리인 시나리오라는 미로에서 길 한번 잃으면 보통은 답없이 한동안 그 속에 갇히게 마련이다. 한참을 그 속에 매몰돼 있다보면 길 가는 아무라도 다리 걸어 자빠뜨려놓곤 다짜고짜 이렇게 묻고 어진다. “대체, 시나리오라는 거, 어떻게 쓰는 거야?”

저명한, 어느 카피라이터는 쓰던 카피가 막혀 답답할 땐 ‘카피라이팅 기본 정석’ 따위의 초보자 입문서를 펼쳐든다 했다. 이야깃거리가 머릿속을 방향없이 떠다닐 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것을 끄집어낼 적절한 방법을 찾는 일이요, 그건 곧 기본적인 공식들을 상기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었다는 요지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그것은 좋은 대안이지 않았다. 기본에 충실한, 써먹기 좋은 교과서라는 게 사실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고, 성장한 영화산업과 비례하여 시나리오의 중요성 역시 높아졌지만 출판된 시나리오 작법 관련 책자들은 멋쩍게도 십수년 지난, 그것도 대부분 번역물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형’이라는 단어에 노랗고 친절한 동그라미까지 그려진 표지를 한, 이 책의 등장은 반갑다.

이 책은 플롯의 기본적인 구조부터 캐릭터와 갈등의 설정, 이야기의 전달, 그리고 대사와 지문의 바른 사용법까지, 시나리오 A부터 Z까지를 미세하게 나뉜 섹션을 통해 샅샅이 훑는다. 다소 관념적인 방법론 일색이던 여타의 작법서와는 차별화되는 포맷이고, 기본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나 같은 직업 작가에게도 뒤죽박죽 얽힌 머릿속의 실타래를 풀어줄 좋은 길잡이가 될 만하다. 무엇보다 밀도 높은 입문서답지 않게 편안한 구어체로 쓰여 있어 초보자에게도 한달음에 읽히기 좋으며, 특히 ‘한국형’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대목마다 예로 들어진 영화들이 대중에게 친숙한- 비디오 대여점에서 어렵잖게 구할 수 있거나 하루 건너 새벽녘 케이블 TV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이미 우리에게 체화된 작품들로 짜여져 있다는 것은 이 책을 더욱 실용적으로 만드는 이유다.

이 책을 읽게 될 지망생들이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시나리오 워크숍’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것은 독자의 능동적인 참여가 필수적인 책이라는 사실이다. 읽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책이 되겠지만 읽고 실천한다면, 감히 말한다. 이 책으로 충분하다.

글=이해영 시나리오 작가, 사진=예스24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