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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코미디’ 어디 갔나요?

“정치와 섹스 이야기야말로 가장 짜릿한 코미디 소재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세상을 달리한 코미디언 이주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디 이주일뿐이겠는가. 정치 풍자 코미디는 많은 코미디언들이 끝없이 되뇌던 ‘꿈’이었다. 기나긴 군사독재 시대를 지나며, 방송 소재는 제한돼 왔다. ‘땡전 뉴스’라는 비아냥을 듣던 방송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다큐멘터리 소재도 시사적인 것은 금기시됐었다. 드라마나 영화도 사랑 타령이나 했지, 정치·사회적 소재는 감히 사용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일단 세상은 바뀌었다. 정치 담론은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독재정권에 빌붙어 먹고 살아온 신문들은 이제 대정부 투쟁에 나서 지금껏 못해온 말들을 모두 쏟아놓는 형국이다. 방송도 뉴스나 시사 다큐를 통해 제 목소리를 내며 ‘편파적’이라는 정치적 공격을 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인터넷을 통한 정치 풍자는 엄청난 규모와 빠른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탄핵 정국’ 때나, 최근 ‘관습 헌법’을 둘러싼 인터넷 정치 풍자는 촌철살인의 재미도 있었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런데 유독 방송 코미디 프로에서는 정치 소재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많은 코미디언들이 정치 풍자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떠드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음에도 말이다. 정치 풍자 코미디가 전혀 없진 않다. 한국방송 〈코미디파일〉의 ‘제17대 어전회의’나, 같은 방송의 〈폭소클럽〉 ‘정한용의 3막3장’이 있다. 시작된 지 얼마 안됐지만 아직까지 그 내용은 신통치 않다. ‘코미디 수준의 실제 정치’를 뛰어넘지도 못한다. 인기가 낮으면 영향력도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별 재미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그렇지만, ‘정치 풍자 코미디’의 문을 열었다는 점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문화방송이나 에스비에스는 〈코미디 하우스〉와 〈웃찾사〉가 있지만, 정치는 전혀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기껏해야 정치인 성대모사 수준이다.

못할 말이 없는 시대에 와서도 정치가 코미디 영역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까닭은 우선 그동안의 관성 탓이 아닐까 싶다. 시청자들을 손쉽게 잡아끌 수 있는 가벼운 말장난이 코미디 기법으로 득세해온 탓이다. 능력 부족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소재가 정치이기 때문이다. 미묘한 정치적 사안을 잘못 건드렸다 큰 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정치 소재에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장벽인 것이다.

구태를 벗지 못한 정치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도 한 요인이다. ‘코미디’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시대 정치인들의 좁은 아량이 방송인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아직까지도 옭아매고 있는 듯하다. 정치 풍자 코미디는 정치에 짜증나고 질린 대중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그리고 웃음의 소재가 된 정치인들에겐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마련한다. 정치 생각도 하기 싫어하는 국민들은 정치를 일상화하고, 정치인들은 그런 국민과 눈높이를 맞출 수도 있다. 이젠 좀 제대로 된 정치 풍자 코미디를 볼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