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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애인의 생애 첫 경험

“화면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이요.” TV 뉴스를 보다 우연히 시각장애인이 이렇게 말하는 걸 봤다.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화면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지?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장애인영화제 취재를 제안했다. 과거 촛불시위도 여러 번 나간 적 있는, 의협심 강한 김도훈 기자가 선뜻 내가 하겠노라 나섰다. 주말을 반납하며 일한 그는 “인터뷰는 많이 했어?”라는 질문에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김도훈 기자는 장애인들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직접 장애체험부터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말문을 텄다. 이번주 기획기사 ‘장애우의 영화보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는 생애 처음 영화관에 온 한 시각장애인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고 썼다. 무엇보다 그 구절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생애 처음 영화관을 찾은 장애인의 미소란 어떤 것일까? 언젠가 TV에서 봤던 장애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라 여행가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 형편이었는데, 이웃의 마음 착한 중년 부부가 그들을 차에 태워 함께 여행을 떠났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도착한 곳은 어느 바닷가. 그곳에서 할머니는 생애 처음 바다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구먼, 내가 평생 바다 한번 못 보여줬네.” 휠체어를 탄 할머니의 손을 붙잡은 할아버지의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 바다를 보러가는 일이, 영화관을 가는 일이 장애인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비장애인인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다만 그들의 눈물, 그들의 미소에서 그들의 절절한 심정을 엿볼 뿐이다.

인간의 관심은 간사한 것이어서 이런 일이 아니면 장애인의 현실을 생각할 기회도 별로 없다. 장애인을 위해 한글자막을 의무화하는 영화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지만,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건 여전히 끔찍한 일이다. 딴 건 다 제쳐놓고 이 나라에선 장애인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길이 없다. 지하철역에 설치된 리프트만 해도 그렇다. 타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릴 뿐더러 추락사고의 위험이 상존한다. 지난 9월24일에도 서울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던 중증장애인 이광섭씨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휠체어를 탄 채 리프트에서 떨어진 이광섭씨는 계단에 부딪혀 머리가 찢어지는 외상을 입었다. 당시 서울지하철공사는 장애인의 조작미숙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해 장애인단체의 비난을 받았다. 조작을 아무리 잘해도 리프트라는 시설물 자체가 위험하다는 건 누가 봐도 명백한 일이 아닐까. 장애인이동권연대가 발표한 자료만 봐도 1999년 혜화역, 천호역에서, 2001년 오이도역, 영등포구청역, 고속터미널역에서, 2002년 발산역에서, 2003년 종로3가역에서 리프트 추락사고가 있었다. 정부는 2004년까지 리프트를 전부 승강기로 교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내가 주로 다니는 지하철역 상황만 봐도 조만간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지금 장애인들은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고 장애인 교육예산 6%를 확보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싸우고 있다. 지극히 당연한 요구지만 이것 또한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다 돈이 없어서 그렇단다. 가뜩이나 경제도 안 좋은데 복지 예산만 어떻게 늘리느냐는 말도 나올 법하다. 국가를 경영하자면 고충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최소의 권리인 이런 요구보다 우선하는 일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나라에서 세금을 걷는 이유는 다 이런 일 하겠다는 것 아니었던가? 열린우리당이건 한나라당이건 이런 일 갖고 단식투쟁하는 모습 한번 봤으면 싶다.

한글자막 상영 의무화에 덧붙여 극장들도 장애인 시설에 과감한 투자를 하길 바란다. 장애인석을 만드는 데 드는 돈이 극장 마케팅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시설이 잘된 극장은 칭찬하고 그렇지 않은 극장엔 항의를 전하시길. 장애인영화제의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일처럼 작은 관심으로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이 대한민국에는 아직 많다.

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