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가장 친한 친구가 좀비가 된다면? <숀 오브 데드: 새벽의 황당한 저주>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친구를 죽여야 한다’ 같은 심심한 답안은 필요없다. ‘즐겁게 같이 살면 되잖아!’ 어수룩한 주인공 숀(사이먼 펙)은 요즘 답답하다. 사랑하는 여자는 그가 바뀌길 원하고, 그녀의 친구들은 그에게 빈정대고 있으며, 무엇보다 한심한 룸메이트가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 미국(악의 축?)의 무인 우주선이 영국의 상공에서 폭발한 날, 기계적으로 반복적인 삶을 이어가던, 그래서 좀비처럼 보이던 주변 사람들이 진짜 좀비로 변해간다. 블러디 먼데이를 맞아 끔찍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주인공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린 얼씨구나 신난다. ‘자, 좀비와 한바탕 싸워봐. 안 그래도 일상이 지긋지긋했잖아.’
그간 좀비영화는 죽지 않는 좀비처럼 끈질기게 등장해왔다. 그런데 <숀 오브 데드…>가 해외에서 시끌벅적한 반응을 얻어낸 이유는 근래 성공적인 좀비물이었던 <새벽의 저주> <레지던트 이블>의 경우와 다르다. 조지 로메로도 즐겁게 감상했다는 <숀 오브 데드…>는 로맨틱코미디(워킹 타이틀사가 제작에 참여했다)와 호러의 21세기형 교배물이어서 그 분위기가 사뭇 흥겹다. 속이 뒤틀리는 상황은 <데드 얼라이브>나 <이블 데드>에 못 미칠지 모르지만, 영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문화에 대한 쿨한 언급과 심술궂으면서도 재치있는 대사는 분명 한수 위다. 가히 ‘비비스와 버트헤드, 좀비와 만나다’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곳곳에 묻어 있는 루저들에 대한 애정과 경쾌하고 깔끔한 진행이 마음에 드는 것은 물론, 호러영화의 새로운 재능을 만났다는 기쁨에 환호가 절로 나온다. 이런 걸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이다. 좀비영화를 본 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숀 오브 데드…>에선 말 된다.
한국에서 <숀 오브 데드…>는 DVD로 직행해버렸다. 결국 DVD로 복수를 벼를 수밖에 없는데, DVD의 구성물이 마음에 든다. 감독과 주연배우(두 사람은 TV물 <스페이스드>로 영국에서 알아주는 스타다)의 신나는 음성해설, 제작단계별 부가영상, 아트 갤러리, 예고편 모음, 사라진 장면 등으로 구성된 부록은 짜임새가 있을 뿐더러 빼곡하게 나열해놓아 뭔가 대단한 것처럼 홍보한 점도 영화만큼 익살맞다. <숀 오브 데드…>는 영화의 성공과 함께 저예산 호러영화 DVD의 제작, 마케팅의 뛰어난 사례로 당분간 입에 오르내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