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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콜라] 허우샤오셴의 도전 "무협은 중력과의 싸움”

영화감독이 장르를 선택하는 데 제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조합도 있다. 이를테면 박찬욱과 로맨틱코미디, 타란티노와 리얼리즘 영화 같은. 느린 호흡과 깊은 화면에 삶의 근원적 비애를 실어온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시엔과 무협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허우샤오시엔의 열혈팬들은 얼마 전부터 그가 무협영화를 구상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문을 챙겨왔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허우샤오시엔이 참석했던 메가토크, 마스터클래스(사진) 등을 진행하며 그와 동행하다시피했던 평론가 정성일씨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감독과의 사석에서 털어놓았다.

“당신의 무협영화라고 할 때 팬들이 떠올리는 건 네 사람의 무림고수가 만나 앉아서 두시간 동안 진지하게 무협의 철학을 논하다가 ‘이제 싸우러 나가자’는 자막이 뜨면서 끝나는 영화다. 정말 그런 건가?” 허우샤오시엔은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믿기 힘들지만 그는 무협이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진짜 장르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갈증은 더욱 심해질 터. 정씨는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을 봤느냐고 물었다. 노감독은 인상을 찌푸리며 “얘기하지 않으면 안되겠느냐”고 말하면서 앞에 놓여 있는 술 한잔을 ‘원샷’했다. 그 원샷이 야멸차다기 보다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던 건 친구 이상의 친구(허우는 장의 <홍등> 프로듀서로 참가했고, 장은 허우의 <희몽인생> 프로듀서로 나서기도 했다)를 향한 말 못할 아쉬움이 배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비평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큰 지지를 얻었던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겹치는 부분이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감독의 답변이 오히려 딱 부러졌다. 그는 <와호장룡>이 ‘가짜’라고 말했다. 건물 지붕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뛰어가는 장면과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한 대나무 숲 결투 장면은 중력의 법칙이 달리 적용되고 있어 “하나의 영화에서 같이 쓸 수 없는 모순되는 시퀀스”라는 것이다. 그는 “무협영화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라고 지적했다.

이 거장의 무협영화에 대한 정의는 무협지의 한 귀절 같다. “무협영화는 무게와의 싸움이다”. 숱한 무술감독들이 배우들에게 와이어를 감으며 무게와의 전쟁을 벌이지만 이 노장의 말은 단지 기술적 차원에 국한된 것으로 들리지 않는다. 정씨는 허우샤오시엔의 무협영화가 “단지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자신(중국)의 역사 안으로 어떻게 귀환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게 될 것같다”고 기대어린 소감을 밝혔다. 허우샤오시엔은 2007년쯤으로 이 프로젝트의 완성을 어림잡고 있으며 그 전에 일본에서 ‘액션영화’를 한편 찍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거대한 하나의 영화적 세계를 구축한 노감독이 지치지 않고 새롭게 떼는 발걸음이 어떤 자국을 남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