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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영화철학의 입문적 해설서 “들뢰즈: 철학과 영화”출간
홍성남(평론가) 2004-11-10

<질 들뢰즈의 타임 머신>(듀크대학 출판부 펴냄, 1997)이란 책의 서문에서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이 쓰고 있는 것처럼, 들뢰즈의 <시네마>는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곤혹스럽게 읽히는 책이다. 그것이 그처럼 곤혹스러운 것은 철학이나 영화 연구 가운데 어느 한쪽 분야에 깊이 몸을 담고 있어서는 들뢰즈의 논의를 제대로 따라가는 데 필요한 이해의 틀이 부족함을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 두권으로 구성된 들뢰즈의 <시네마>는, 영화의 역사와 이론을 다룬 영화책인 듯하면서 철학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기도 한, 그래서 무언가 엄밀한 규정을 벗어나는 책인 것이다. 들뢰즈의 저작을 앞에 두고 이런 당혹함과 마주하는 이들에게 유용하고 비교적 명쾌한 길을 알려주는 책이 바로 쉬잔 엠 드 라코트의 <들뢰즈: 철학과 영화>이다.

<시네마>에서 자주 인용되는 문구 가운데 하나로 이것이 “이미지와 기호들을 분류하려는 시도”라는 게 있다. 그러나 영화 연구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서 <시네마>를 경유해 영화 이미지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학을 머릿속에 입력해보려는 생각을 가졌다간 실망을 하기 쉽다. <들뢰즈: 철학과 영화>의 저자 라코트에 따르면 <시네마>는 영화 이미지들과 기호들을 철저히 분류하는 영화(이론) 서적이 아닌 것이다(그래서 라코트의 책에서는 이미지들의 분류에 대한 설명에 지면을 거의 할애하지 않는다). 그보다 <시네마>는 철학서, 즉 철학하는 방법을 다루는 책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철학과 동일한 문제들을 공유하는 영화라는 대상을 철학적으로 다루고 그래서 철학을 존재케 하려는 의지의 산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라코트는 부제로 쓰인 ‘운동-이미지에서 시간-이미지로의 이행’이라는 문제를, 고전영화에서 현대영화로의 영화 (이미지) 역사의 변천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시간, 실재, 사유 등과 관련해 개념들을 창조하는 상이한 방식들이라고 하는 철학적 관점에서 서술해나간다. 그렇게 해서 저자가 종국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시네마>의 전반적인 형식적 구조이고 들뢰즈가 야심차게 시도한 프로젝트의 의미이다. 저자의 요령있는 설명과 역자의 성실한 번역 탓에 아마도 대략 120쪽에 불과한 이 얇은 책만 읽어도 들뢰즈의 <시네마> 앞을 막아선 큰 난관 하나는 덜었다는 생각을 가질 만하다. 무엇보다 더 좋은 건 그래서 들뢰즈의 원전 자체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