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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 회고전 ‘사랑과 청춘 1965-1998’ [4]
김혜리 2004-11-09

신칸센 대폭파 新幹線大爆破(1975)

감독 사토 준야 l 출연 다카구라 겐, 치바 신이치 l 152분 l 컬러

도쿄발 하카타행 고속열차에 폭탄을 장치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시속 80km 이하로 떨어지면 폭발한다는 설정은 <스피드>의 원조격이다. 의협의 캐릭터로 각인된 다카구라 겐이 분한 주범은 도산한 양심적인 중소기업 사장. 공범은 “혁명이 성공한 나라로 가고 싶다”는 도쿄대 학생운동 베테랑과 미국에서 반환된 오키나와로부터 흘러든 절망한 노동자로 설정해, 범인들에 대한 동정 속에 1970년대 고도성장의 그늘을 반추하도록 유도했다. 스크린 프로세스와 미니어처 촬영을 동원한 이 영화는 긴박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편집이 아쉽지만 제작연도를 상기하면 대단한 면이 있다. 작은 이상에도 멈춰서는 신칸센의 안전대책이 거꾸로 올가미로 작용한다는 구도가 자연재해 대비가 늘 철저한 일본인이 상상하는 악몽답다. 모험을 해서 모두를 살리느냐, 승객을 희생하고 기차를 세워 도심의 피해를 막느냐를 놓고 경찰과 철도 관계자가 벌이는 막판 갈등이 흥미롭다. 할리우드영화라면 휴머니즘과 관료주의의 대결로 가겠지만, 이 일본의 액션 대작에서는 책임자들끼리 일단 결론을 내고 그것을 누가 기관사에게 전달하느냐의 문제로 초점이 옮아간다.

미친 과실 狂った果實(1981)

감독 네기시 기치타로 l 출연 혼마 유지, 나가가와 유키 l 84분 l 컬러

1970년대 후반 닛카쓰 로망포르노의 주력이었던 네기시 기치타로 감독이 최고의 스타 이시하라 유지로 주연의 1956년작 영화와 같은 제목으로 만든 암울한 청년영화다. 시골 신관의 아들 테츠오는 도쿄로 상경해 낮에는 주유소, 밤에는 퇴폐 술집에서 일한다. 의붓아버지의 정부 노릇을 하는 치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테츠오가 자위행위를 하는 옹색한 모습을 목격하고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오염된 기성세대에게 다른 방식으로 기생하면서 스스로도 망가져가는 두 젊은이는 예기치 못하게 스쳐가는 UFO처럼 서로를 스쳐간다. 어처구니없는 섹스의 이미지도 강렬하지만 결말부의 낭자한 폭력은 그것을 덮고도 남는다. 피투성이 테츠오의 마지막 울먹임은 <초록물고기>에 나온 막동이의 통화를 연상시킨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時をかける少女(1983)

감독 오바야시 노부히코 l 출연 하라다 도모요, 다카야나기 료이치 l 104분 l 컬러

한국영화 <체인지>의 원안 <전교생>의 감독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계단과 비탈이 어우러진 고향 오노미치를 배경으로 많은 영화를 찍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그중 한 작품. 과학실을 청소하던 카즈코는 기묘한 라벤더 향기에 취해 쓰러진 이후 자신에게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음을 깨닫는다. 한편 어린 시절 따뜻한 추억의 상대인 후카마키에 대한 감정도 사랑으로 발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카즈코는 후카마키의 손에 있어야 할 흉터가 없음을 발견한다. 시간여행과 기억이식의 SF 모티브로 사춘기의 로맨틱한 환상을 그렸다.

So What(1988)

감독 야마가와 나오토 l 출연 미나부치 가즈키, 아즈마 미키히사 l 98분 l 컬러

펑크스타일의 밴드 멤버, 근사한 조명. 멋진 연주가 막 시작하려고 하면, 삐거덕 문이 열리면서 갑자기 소가 들어온다. 광에서 연습하는 4인조 농촌 고교밴드 ‘롤링 록스’의 처지는 늘 이 모양이다. 마침 대입 준비하겠다며 드러머가 탈퇴하자, 리더 히로시는 “고2 주제에 공부를 해? 요즘 애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라며 개탄한다. 밭에 도로가 나서 부자가 된 집의 아들인 그는 대학을 못 가면 농사지을 땅도 없는 처지. 도쿄 전학생이 드러머로 합류해 전열을 정비한 밴드 멤버들은, 단 한번의 제대로 된 공연으로 지리멸렬한 청춘을 돌파하기로 합심한다. <GO>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 청춘영화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가 소싯적에 자극받았다는 수작. 다케나카 나오토가 왕년에 춤깨나 추었던 스님으로 우정출연한다.

파도소리-집단치한 유부녀 엿보기 海鳴り(集團癡漢 人妻□き)(1991)

감독 사노 가쓰히로 l 출연 가지노 고, 기시 가나코 l 60분 l 컬러

영화 초반부터 다짜고짜 야외 정사인가 싶으면 곧장 엿보는 마을 총각들의 시선이 개입해 거리감을 부여한다. 바닷가 민숙집을 운영하는 부부에게 10년 전 도쿄로 말없이 사라진 아내의 옛 애인 마사미츠가 찾아온다. 자신없는 중년 남자, 욕구불만인 중년 여자가 된 다섯명의 옛 동급생들은 바닷가에 모닥불을 피우며 청춘을 회상한다. 욕망을 해소하거나 속죄하고 싶어 들끓는 인간들의 조바심은 폭력과 섹스, 혹은 폭력적 섹스로 동시에 폭발한다.

토카레프 トカレフ(1994)

감독 사카모토 준지 l 출연 야마토 다케시, 사토 고이치 l 103분 l 컬러

귀여운 아들을 가진 미치오의 직업은 유치원 통학버스 기사.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어느 아침, 총을 든 괴한이 버스 창 너머로 미치오의 아들을 납치한다. 몸값을 전달했음에도 아이는 쓰레기봉투에 싸여 돌아온다. 비탄에 빠진 아내는 남편을 원망하기 시작하고, 범인에게 오토바이를 빼앗긴 또 다른 피해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아내보다 느리게 그러나 더욱 치열한 분노를 키우는 미치오에게, 복수는 유일한 삶의 이유가 된다.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기 위해 경찰조차 따돌린다. 유괴와 복수의 모티브는 <복수는 나의 것>을, 예민한 악마 같은 범인의 캐릭터는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킨다. 토카레프는 러시아 권총으로 일본 암흑가에서 애용되며 많은 죽음을 초래했다.

힘좀 냅시다요 がんばっていきまっしょい(1998)

감독 이소무라 이쓰미지 l 출연 다나카 레나, 마노 기리나 l 120분 l 컬러

입학식 전날 방파제에 앉아 고등학교에 가면 무엇을 할지 생각에 잠겨 있던 에츠코는, 문득 바다를 저어가는 보트에 매혹된다. 그리고 교사를 졸라 여자 보트부를 창설한다. 마음의 한 조각만 드러내는 느릿한 대사들이 매력적이다. 노를 젓는 소녀들의 찡그린 얼굴과 피맺힌 손바닥을 응시하는 카메라가 다큐멘터리적인 감동을 안긴다. 이상은이 주제가를 불렀고, 비주류 스포츠, 레저 종목을 통해 평범한 사람의 생활감정을 잡아내는 데에 능한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