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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선의 선택을 지지한다

요즘 젊은이들한텐 낯선 말이지만 ‘혼식’이라는 말이 있다. 쌀밥이 아니라 보리나 잡곡을 섞어 먹는 걸 가리키는 단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박정희 정권 시절엔 혼식장려정책이란 게 있었다. 혼식을 하면 튼튼해진다는 회유도 있었지만 도시락을 검사해서 쌀밥을 싸온 녀석들을 색출, 처벌하는 공갈, 협박도 적지 않았다. 순진한 어린 마음엔 혼식을 안 하면 정말 무슨 큰 병에 걸리는 줄 알았다. ‘혼식하라’는 말씀에 깊이 감화받은 아이들 가운데 자발적으로 프락치가 되는 친구도 있었다. “선생님, 얜 도시락 위만 살짝 보리를 얹은 거래요. 밑엔 다 쌀밥이에요.” 이렇게 일러바치기도 했다. 우리 집에선 보리보다 좁쌀을 섞는 일이 많았다. 그 무렵 우리 집에서 닭을 키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닭과 내가 같은 걸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난 좁쌀을 섞은 밥이 무척 싫었다. 어린 시절 상처 때문인지 지금도 난 흰 쌀밥만 좋아한다. 입맛이 촌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억지로 했던 혼식을 다시 떠올리기 싫기 때문이다.

중학교 올라갔을 때는 북한에서 서울을 물바다로 만드는 음모를 꾸민다는 뉴스를 접하고 화들짝 놀랐다. 북한에서 만드는 댐이 물을 쏟아내면 서울이 완전히 물에 잠긴다는 그 소식은 한동안 장안의 화제였다. 당시 대통령 전두환은 평화의 댐을 만들어야 한다며 전국적인 모금을 유도했다. 나도 얼마를 냈던 기억이 난다(음, 분하다! 평화의 댐이 사기극이라는 뉴스를 들었을 때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역시 귀찮다). 내가 얼마나 속고 살았는지 대학교에 가서 조금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온몸으로 저항하고 살지는 못했다. 극장에서 <애국가>를 트는 일이 언제 없어졌더라?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80년대엔 확실히 영화를 보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들어야 했다. <애마부인>을 보건 <로보캅>을 보건 <애국가> 제창이 끝나야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딴에 반항한다고 자리에 그냥 앉아 있어본 적이 있다. “야, 이 XX야”라는 사나운 말이 뒤통수에 꽂혔다. 내게 그렇게 욕했던 분은 <애국가> 제창 순서가 없는 요즘 극장에 대해 투덜대고 있을까? 아무튼 그런 일이 70년대와 80년대엔 너무 많았다.

이제 그런 기만은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깨우칠 일은 많다. 지난 465호에 실린 유재현씨의 칼럼 ‘김부선은 죄가 없다’와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이번에 낸 소송은 그간 내가 속고 있던 사실 하나를 일깨워줬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 그것은 대마초는 담배보다 덜 위험하다는 것이다. 유재현씨가 쓴 책 <대마를 위한 변명>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대마초는 담배보다 덜 해롭고 담배보다 나은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대마초의 합법화로 담배는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고 국민건강은 보다 향상될 것이다.” 너무 과격하고 낭만적인 주장이라고? 그럴 수도 있지만 대마초가 담배보다 중독성이 덜하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이건 세계보건기구가 확인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마에도 위험요소가 있다. 술과 담배가 그렇듯 약물 과용, 남용은 언제나 그렇다. 문제는 우리의 편견이다. 대마초를 피운 사람, 하면 무조건 퇴폐사범이나 범죄자로 낙인찍는 풍토, 그것이 권력의 통치수단 가운데 하나였음을 이제는 짐작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장발을 단속하고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재던 시절, 청년문화가 막 꽃피던 그 시절에 대마초를 피운 연예인들이 줄줄이 감옥에 간 역사가 그냥 우연은 아닐 것이다. 백번 양보해 대마초 사용에 대해 처벌을 한다 해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조항은 너무 심하다. 많은 나라에서 대마초 사용을 경범죄로 다루는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김부선씨의 소송은 분명 우리 사회의 편견에 대한 도전이다. 이번주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세간의 비난 가운데 “니네 딸도 먹이지 그러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가슴이 아프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몽매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김부선씨의 용기있는 선택을 함께 응원했으면 좋겠다.

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