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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열대야> 신데렐라 입성이후…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는 신데렐라 스토리다. 오영심(엄정화)은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에 성공한 듯 보인다. 남편(신성우)은 실력있는 신경외과 전문의에, 시아버지(이순재)는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재벌급 의료계 원로다. 시놉시스를 보면 시어머니(박원숙)는 “교양있고 기품있는, 홍라희 호암미술관장 같은 이미지”다.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나 고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오영심이 이런 집안의 맏며느리가 됐다면, 그건 당연히 왕자비가 된 재투성이 이야기다.

그런데 는 결혼 뒤 이야기다. 안방극장을 명멸한 무수한 신데렐라 이야기와 달라지는 지점이다. <파리의 연인>도 <황태자의 첫사랑>도 모두 결혼 또는 사랑의 성립 직전까지가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이다. 재투성이는 왕자 주변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감동적인 사랑의 꼭지점에 도달한다. 여기까지다. 신데렐라가 그 뒤 왕궁에 들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는 그 얘기를 들려주고픈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재투성이는 여전히 재투성이인 채다. 그는 예전 자신의 신분과 비교되지 않는 시집의 휘황한 광휘 안에서 오히려 예전보다 더 힘겨워 보인다. 평균 학력이 석사 이상인 시집 식구들 사이에서 그는 “너는 그것도 모르니”로 아침을 시작해 “도대체 니가 아는 것은 뭐니”로 하루를 마감한다. 집안 일은 모두 그의 몫이고, 누구도 그를 왕자비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경멸적 시선에 내몰린다. 그럴 것이 그는 시집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이질적인 존재다. 그는 아랫동서될 새 신부 집에서 보내온 예단을 둘러보다, 자신에게 배당된 수표가 2000만원인 걸 알고 경악한다. 그리곤 “난 이런 큰 돈은 못 받겠다”고 한다. 식구 수를 꼽아보며 총액이 얼마가 될까 놀라워한다. 그런 그가 시어머니는 더 할 나위 없이 한심스럽기만 한다. “어디서 예단 봉투를 쑥쑥 맘대로 열어 보느냐”는 것이다. 못 배운 티 낸다는 것이다. 그에게 결혼이 돈잔치가 되는 세태는 이해할 수 없는 허영의 발로로 느껴진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그건 당연한 문화일 뿐이며, 중요한 건 그런 ‘관습’을 우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이다. 그와 시어머니는 한 집에 살고 있어도 여전히 계급이 다르다.

왕자조차도 그에겐 힘이 될 수 없다. 클래식을 즐겨듣는 남편과 텔레비전으로 코믹 영화를 보며 깔깔대다 잠드는 그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남편은 옛 여자친구의 적극적 구애를 받으면서도 결코 바람만은 피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그건 도덕적 다짐일 뿐, 아내와의 관계는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부부의 다름은 취향의 다름이며, 그건 이미 돌이킴이 불가능한 계급적 취향의 다름이기 때문이다. 는 수많은 신데렐라 이야기들이 간과해 온, 결혼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한국 사회 구성원 사이의 계급적 분할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나아가 그 계급의 차이는 단지 돈만이 아니라 취향을 포함하는 문화적 자산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데 의 독특함이 있다. <파리의 연인>에서 보여준, 강태영(김정은)과 한기주(박신양) 사이 계급적 취향의 섞임이란 실은 실현될 수 없는 판타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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