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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한국 영화계를 밝힌 시나리오 10편, <2003년 한국 시나리오 선집>

“될 만한 영화가 된 한해.” 영화 관계자들은 2003년 한국 영화계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신선한 소재들과 획기적인 상상력, 그리고 그에 열광하는 관객으로 풍요로웠던 한해였다. 작가영화와 관객이 서로를 소외시키던 그 오랜 관습이 서로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며 경계를 지우며 그렇게 소통을 시작한 한해였다. 21권째를 맞이한 은 행복했던 영화계의 “될 만한” 시나리오를 선택하여 그 소통이 단순한 우연으로 시작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편집위원들에게 옥석 중의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는 풍요로운 상찬의 고민을 안겨주면서 말이다.

총 10편의 시나리오로 구성된 이번 선집은 무엇보다 다채롭다. 그 다양함을 두개의 주제로 나눈다면, 하나는 한국 근현대사 돌아보기, 또 하나는 원작 리메이크하기가 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줄기가 모두 ‘다시 읽기’의 작업이라는 사실. 실제 사건 혹은 원작이 ‘다시 읽기’의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영화적 상상력의 참신함이 중요하다. 실제 사건일 경우 역사에 대한 책임감 있는 상상력이, 원작을 다룰 경우에는 원작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상상력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집이 선정한 <선택> <살인의 추억> <실미도>와 <싱글즈>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올드보이>는 한국 영화계에 상상력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밖에도 <지구를 지켜라!>처럼 그 자체로 한편의 현실 만화를 창조해내거나 처럼 고요한 공포를 양산하며 기괴함과 현실을 엮어낸 영화들이 있다. 또한 <와일드카드>처럼 외부로 발산되는 역동성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처럼 내면을 파고드는 철학을 담은 영화도 있다.

이번 선집을 읽다보면,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갖춘 이 시나리오들은 영화와 분리되어 충분히 개별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상화된 이미지 없이도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행간에 빠지다보면 나만의 재미난 상상력이 마구 발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피와 살을 부여받기 이전의 문자들이 꿈틀거리는 긴장을 느낄 수 있다. 감독 각각의 개성과 각 시나리오의 색깔이 만나는 지점을 비교해보는 것도 즐겁다. 영화를 이미 본 이들에게는 영화를 기억해내는 새로운 방식으로,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소설과 만화를 아우르는 한편의 흥미로운 텍스트로 다가올 듯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엮음/ 커뮤니케이션 북스 펴냄]

남다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