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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을 담보로 내 욕심을 믿어주세요, <썸>의 배우 송지효
사진 이혜정박혜명 2004-10-27

세 걸음과 한 걸음의 차이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지어야 할까. 세 걸음과 한 걸음은 물리적으로 두 걸음의 차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낯선 관계와 친밀한 관계를 구분하는 거리일 수 있다면, 장윤현 감독의 신작 <>에서 가까운 미래를 데자뷰로 보는 여자 서유진 역의 배우 송지효(24)는 그 세 걸음과 한 걸음의 차이가 전혀 없거나, 있는데 기준이 아주 특이한 사람이거나였다.

기자를 대하자마자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때 만났던 얼굴임을 상기해내고 얼굴을 활짝 편다. 일단 웃으면 마냥 좋아라 싶은 표정이 어린애처럼 흐트러진 말투와 뒤섞이니 그는 그저 소녀 같다. 시나리오보다 감독에 대한 명성을 먼저 듣고 영화에 출연했다며, 그때의 자격지심을 쉽게 이야기한다. “무서운 거예요. 너무 무서웠어요. 생짜 신인인데 내가 정말 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부담스럽고…. 그래서 처음엔 막 피해다녔어요. 감독님이 너는 시나리오를 볼 때 캐릭터랑 스토리 중에 어떤 걸 중요하게 보니, 그런 거 물어보시면, 대답 일부러 흐리고. 잘못 대답하면 왠지 비웃으실 것 같았어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살짝 목소리를 낮추긴 했다. “이런 거 말해도 되나…” 하는 건 주위 눈치를 보는 것이고,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다. 그는 남들로부터 감추도록 배운 것과 본인이 정말 감추고 싶은 게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 같다.

송지효는 자기 마음속에도 “구렁이가 100마리는 있는데” 사람들이 왜 몰라줄까, 진짜로 답답한지 가슴을 퍽퍽 쳤다. “내 생각에도 내가 독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근데 저도 욕심은 진짜 많거든요. 제 생각엔 그걸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궁금한 게 생기면 물어봐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생각하고 해결하니까 사람들은 그게 욕심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영화 찍고 싶은 맘이 없냐는 말도 진짜 많이 들었어요.” 그리하여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오게 된 속마음. 눈물이 절대적으로 많이 필요한 클라이맥스신에서 도저히 눈물이 안 나더라고 감독에게 이야기했다. 촬영감독에게까지 호통을 맞았다. 배우가 우는 게 기본인데 그게 안 돼? 그럼 너 배우 때려치워.

“그래서 그때 찍은 장면을 은근히 기대 많이 했었거든요. 근데 시사회 때 보니까, 남들도 다 하는 정도로 했더라고요.” 죽어봤어야 죽는 사람이 어떤지를 알죠, 라고, 마약을 해봤어야 약 맞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죠, 라고, 송지효는 <>에서의 연기고충을 털어놓는다. 그의 말은 당연하지만, 그 당연한 말을 그대로 하는 배우는 별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2000년 CF모델로 데뷔해 이제 영화 두편을 찍은 신인배우에게 처음부터 너무 갖춰진 태도를 기대했던 걸까. 배우가 천직 같지는 않지만 빨리 배우고 싫증도 잘 내는 자기 성격엔 맞는 것 같다고 생긋 웃어버리는 스물넷의 아가씨. “차기작이요? 없어요” 식으로 한 걸음의 친구와 세 걸음의 기자 사이를 가리지 않는 태도가 이어지고, 문득 망설여진다. 이 곱고 밝은 사람의 속마음이 능구렁이건 천진난만함이건 어쨌거나 자신의 못난 점만 늘어놓고 있는데 그걸 다 옮길 필요가 있나. 이만큼 솔직했던 사람도, 그래서 오히려 가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사람도, 송지효란 배우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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