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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만 보면‥대한민국은 불륜공화국?

한국방송 <두번째 프러포즈>와 <부모님전상서>에선 남편의 불륜이 이혼 사유가 되거나 부부관계의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등장한다. 문화방송 에선 아내가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불륜에 목숨거는 주체로 나온다. 에스비에스 <아내의 반란>은 성적 트러블 때문에 빚어지는 부부의 맞바람을 경쾌하고 코믹하게 그린다. 우측 첫번째 사진부터 <아내의 반란>, <부모님 전상서>,

드라마만 보면, 대한민국은 가히 ‘불륜 공화국’이다. 현재 지상파 방송 3사의 방영 드라마는 모두 23편. <한겨레>가 하나하나 따져보니 이 가운데 불륜 코드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작품은 8편 뿐이다. 65% 가량의 드라마는 어떤 형식으로든 불륜을 극 전개의 주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국회 개헌의결선에 근접하는 비율이다.

방송사 별로도 큰 차이가 없다. 한국방송은 11편 드라마 중 <알게 될거야> <이순신> <반올림>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금쪽같은 내새끼>를 뺀 6편의 드라마가 불륜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유혹>과 <두번째 프러포즈> <부모님전상서> 등은 30대의 현재진행형 불륜을 그리고 있고, <티브이소설 그대는 별>과 <오!필승 봉순영> 등은 부모 세대의 불륜이 극 장치로 배치됐다. 금요일 밤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은 이혼부부 사례에 기초한 실화드라마답게 불륜이 드라마의 핵심 소재이자 주제다.

문화방송은 좀 더 심각하다. 시트콤을 빼면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는 모두 6편. 이 가운데 불륜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은 것은 20대 후반 남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루는 일요 아침드라마 <단팥빵> 하나다. 월화 드라마 <영웅시대>는 주인공 기업가의 과거 얘기 속에 불륜을 녹여내고 있고, 주말드라마 <한강수 타령>은 언니(김혜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동생(김민선)에게 접근하는 남자(최민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새 수목드라마 에서 엄정화는 남편을 속이고 불륜에 빠졌다 결국 이혼한다. 아내의 불륜이 비극 단초를 제공하는 아침드라마 <빙점>으로 하루를 시작해, 부모 세대 불륜의 어두운 후과가 펼쳐지는 저녁 일일드라마 <왕꽃선녀님>을 거쳐, 날마다 다른 색깔의 불륜 이야기를 담은 밤 시간 드라마로 하루를 마감할 수 있게 했다.

한편빼고 전부 ‘불륜’인 방송사도

에스비에스도 다르지 않다. 심혜진과 이종원이 불륜남녀로 그려지는 아침드라마 <선택>에서 ‘부부 치유 드라마’를 표방하며 부부 3쌍의 맞바람 기싸움을 묘사하는 금요드라마 <아내의 반란>까지, 6편 드라마 중 5편에서 불륜이 주요 코드로 등장한다. 남자의 외도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문제시되지 않던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장길산>이 유일하게 빠졌다.

드라마가 그리는 불륜의 양상은 다채롭기까지 하다. <오!필승 봉순영>이나 <왕꽃선녀님> <남자가 사랑할 때> 등에선 과거 부모 세대의 불륜이 자녀 세대의 운명에 개입하는 요소다. 대기업 후계자의 사생아로 태어난 오필승은 백수건달에서 순식간에 회사 차기 경영자로 올라선다. <왕꽃선녀님>의 초원은 호텔사업가 아버지와 무녀 사이 사생아로 태어나 입양과 파양을 겪은 끝에 결국 무녀의 길을 밟게 된다. <남자가 사랑할 때>에선 부모 세대 불륜과 치정, 복수극이 자녀 세대의 사랑과 얽히며 남녀 주인공 고수와 박정아가 모두 숨지는 비극을 부른다. 젊은 시절 사랑했으나 여자의 신분상승 욕망 탓에 헤어져야 했던 고수-박정아 사이에도 법적 불륜의 ‘결과’인 아이가 남는다.

방송 3사 드라마 65%가 ‘불륜코드’ 작가·피디들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 시청자 게시판 “아예 불륜광고 질타”

반면 수요일 밤 맞붙는 한국방송 <두번째 프러포즈>나 문화방송 는 부부의 불륜을 정면으로 다룬다. 둘 다 남부러울 것 없던 부부가 새로운 사랑 앞에 흔들리며 깨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차이도 있다.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남편(이영호)이 불륜을 운명적 사랑으로 당당히 선언하는 주체로 나온다면, 에선 엄정화가 자식과 가정을 버리고 남편 아닌 남자를 선택하는 아내로 등장한다.

불륜을 다루는 드라마 속 시각도 엇갈린다. 한국방송 주말극 <부모님전상서>에서 남편 허준호의 불륜은 절실한 느낌없는 한때의 바람 또는 외도로 묘사된다. 물론 아직 그의 바람은 건전한 가정을 위협하는 칙칙한 뒷골목 냄새가 배어있다. 에스비에스 금요드라마 <아내의 반란>은 경쾌한 어조로 부부 불륜을 다룬다. 조민기-변정수 커플은 성적 트러블 때문에 서로 맞바람을 핀다. 부부관계에서 성이 사소한 문제일 순 없지만, 애절한 사랑이나 심각한 갈등 따윈 따르지 않기에 둘의 불륜은 한없이 가벼워 코믹하기까지 하다.

지난주 끝난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아일랜드>에선 불륜이 아예 그 ‘부도덕’의 흔적을 지워냈다. 중아-강국과 시연-재복은 서로 ‘교차 불륜’에 빠져들지만, 서로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담담한 여정처럼 그려질 뿐이다. 영혼을 잠식하는 죄의식과 불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아와 강국은 사랑의 상대를 바꿨으면서도 둘의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하고, 친구로 남는다.

1996년 유부남(유동근)-유부녀(황신혜)의 불륜을 그림같은 영상으로 잡아낸 드라마 <애인>은 국회 상임위에서 ‘불륜 조장 드라마’라는 질책을 받았다. 지난 3월엔 방송위가 아침 드라마의 ‘불륜성’에 따끔한 일침을 놓기도 했다. “최근 지상파 3사 아침드라마는 불륜과 치정에 따른 애정갈등과 가족 반목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익성 윤리성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불륜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드라마 소재로 가장 빈번히 차용된다. 작가와 피디들은 “드라마가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내의 반란> 연출을 맡은 곽영범 피디는 “여러 아줌마들 만나서 얘기들어보면 강남쪽의 유부녀 치고 애인없는 사람이 없단다”고 말했다.

필연적 묘사까지 도매금으로‥

그럼에도 불륜 일색의 드라마 구성에 대한 시청자의 눈길은 따갑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아이디 ‘캣크라이’는 “가뜩이나 이혼율도 높은데 드라마가 아예 이렇게 하면 불륜 성공한다고 광고를 해댄다”고 질타했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불륜 소재에 집중하는 탓에 드라마 자체의 다양성과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도덕적 비난 못지 않다. 삶의 다양한 계기에는 눈돌리지 않고 천편일률로 불륜에만 매달리는 모양새는 드라마 자체의 활력까지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네티즌 ‘은피아’는 “<풀하우스> <대장금>의 인기는 건강드라마였기 때문”이라며 “난 불륜드라마는 절대로 안본다”고 했다. 현실 묘사를 위한 불륜의 소재화는 불가피할 터이지만, 드라마 속 불륜이 현실의 과잉된 반영이진 않은지, 그 때문에 우리 삶의 다른 굴곡들은 외면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아가 필연적인 불륜묘사마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게 된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