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훗날 영화기자가 되리라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하길 했나(정영일이 놓치지 말라고 한 영화는 거의 다 놓쳤고), 영화를 전공하지도 않았으며, 하다못해 동호인에도 가입한 적이 없다.
1995년 <씨네21>과 <키노>가 창간하면서, 그리고 타르코프스키와 <천국보다 낯선>이 유행이었을 때 솔깃해하긴 했다고 한다.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 동료들이 학과 공부보다 영화에 더 심취할 때 그 이유가 궁금해서 파스빈더와 고다르 등속을 몰래 빌려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애정의 발로는 아니었던 것 같다. J는 하릴없이 중얼거렸다. “영화가 도대체 뭐기에 사람들이 미치는겨.”
사명감도 없어 보이는 그가 기자가 된 것도 조금은 우스운 일이라고 그의 친구들은 증언한다. 나이도 꽉 차고, 학비가 떨어지는 것에 비례해 학문에 대한 열정도 식어가자 취업을 생각했던 것 아니었을까. 답안지를 밀려 쓰고도 입사 시험에 붙은 건 그가 예상 작문 시험 주제를 딱 하나 찍어서 열나게 외웠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J는 “인터랙티브 하나만 달달 외웠노라”며 회상했다.
다 아시겠지만 기자가 먼저 돼어야 영화기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러저러한 잡지사를 돌아다니다가 그는 일간지 기자 특별전형이란 이상한 뒷문을 밀고 들어가 일간지 기자가 되었다. 데스크는 J의 이력이나 취미와는 상관없이 대뜸 영화를 맡겼다. 그의 안목에 축복있으라. 뜻하지 않게 영화를 밥벌이로 삼게 된 J.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등 떠밀려 영화에 악수를 건넸다. “이제 친하게 지내장께.”
뒤늦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그를 불태웠다(그 탓인지 피부가 까만 편이다). 올 봄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린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은 여기에 기름을 드럼통째로 끼얹은 사건이었다. 그전까지 J는 날카로운 첫 키스만 주고 사라진 첫사랑에 가슴 아파했다. 그 첫사랑의 이름은 문학이었다. 밥까지 굶어가며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을 연달아 보던 J는 두팔을 높이 들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영화여, 내가 졌노라.”
그러나 경찰서와 검찰청 등 험한 출입처가 더 많은 기자 사회에서 영화기자로 쭉∼ 살아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J는 영화와의 동거를 더 오랫동안 하기로 마음먹고 영화 전문지로 이직을 하게 된다. J는 조니 뎁을 닮은 이 전문지 편집장과 미국 출장길에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인연을 떠올렸던 것이다. 이 인연 덕인지 그는 영화 전문지 기자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 전문지에 있다고 영화기자냐, 영화기사를 써야 영화기자지. 자, 그가 입사해 쓴 기사 목록을 훑어보자. 첫 기사는 이슬람 문화, 다음주는 연극 연출가, 또 그 다음주는 프로야구 원년의 추억. J의 아내는 J에게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여보, 당신은 언제 영화기사 써?” J는 “그래도 다음주는 40년 전 충무로 이야기니 점점 영화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아내의 손을 붙잡았다고 한다.
꼭 영화 프리뷰 기사 한번 써보겠노라고 벼르던 J에게 기회가 왔다. 모처럼 시사회에 다녀온 뒤 J는 주위 동료들에게 “<콜래트럴> 재미있던데”라며 사전 정지작업을 했다. 지금 J는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자판을 애무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기쁘랴. 우리, J가 영화와 맺은 이 기이한 인연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을까. 우연이 필연이 되고, 의심이 확신이 되었도다.
이종도 nacho@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