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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콜라] 영화제 규모보다 개성을 찾자

파리 날리는 영화제

오장동 냉면 골목에 가면 한참을 줄 서 기다렸다가 냉면 먹기 바쁘게 일어서야 한다. 명동의 유명 칼국수집도 마찬가지다. 장사 잘 되는 맛난 집에 가면 손님 쪽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미 번창했고 지금도 번창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도 마찬가지다.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선 영화 보기가 힘들다.

99년, 2000년만 해도 기자에게 발급되는 프레스 ID카드를 지니고 가면 표를 끊지 않아고 객석이 빈 경우에 한해 영화 시작하고 5분 가량 지나 극장 안으로 들여보내 줬었다. 올해는 어림도 없었다. 표 없으면 프레스 ID카드 할애비라도 못 들어간다. ID카드용으로 별도로 수량을 정해놓고 표를 발급하는데, 상영 하루 전날부터 표를 끊을 수 있다. ID카드 발급량이 늘어나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그날 상영작은 물론, 다음날 상영작도 매진돼 버린다. 돈주고 사는 일반 표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힘들게 표를 끊은 영화를 상영시작 시간 12분 정도 늦게 갔더니 안 들여보내줬다. 이미 들어가 영화 보고 있는 관객들에 대한 배려라는데, 타당한 말이었다. 부지런하지 못한 자신을 탓할 수밖에. 다행히도 올해 부산영화제의 화제작 중엔 국내에 수입된 영화가 상당수 있었다. 개봉할 때 보면 되지 하고는 영화 대신 찾게 되는 게 술이다. 마시고, 마시고 그 후유증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젠 부산영화제 갈 때 ID카드 챙길 게 아니라 술깨는 약을 챙겨야겠다고 다짐하거나, 아니면 범생스럽게 근면 성실을 결의할 즈음 떠오르는 영화제가 있다.

지난해 광주국제영화제 때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의식>이라는, 훌륭한 영화를 보러 극장 입구 가까이 가니까 영화제 자원봉사자들이 “어서 오십쇼”하며 밖으로 마중나왔다. 극장 안엔 나 말고 네명 정도 더 앉아서 영화를 봤다. 워낙 손님이 안 오니까 어쩌다 오면 자원봉사자들도 반가운 거였다. 표 끊을 필요도 없다. ID카드 보여주면 “어소 오십쇼”이다. 나중엔 극장마다 자원봉사자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그냥 통과시켰다. 이만큼은 아니지만 전주국제영화제도 갈수록 찾아오는 발길이 준다. 영화제 개막일(통상 목요일 또는 금요일) 주말엔 그나마 손님이 많지만 월요일부터 파리 날리기 시작한다.

국내 영화제 사이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점점 두드러져 가고 있다. 그러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행사가 아닌 만큼 자유시장의 법칙이 그대로 관철되지 않는다. 장사가 안 돼도 영화제 규모가 줄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영화제가 많은 건 좋지만 모든 영화제가 300편씩 틀어대는 ‘대규모’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규모보다는 저만의 개성을 살리는 영화제가 된다면 전주, 광주에서도 ID 카드 흔들며 영화보기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돼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