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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더러운 입으로 말하는 미국, <로버트 크럼의 아메리카>

은하계를 관할하는 우주 정부가 지구 최강의 나라 미국을 대표할 두 사람을 뽑아간다면 누가 선택될까? 두명의 대선 후보인 부시와 케리? 그보다는 부시와 마이클 무어가 정당하지 않을까? 미국의 지배적 가치에 의문을 표하는 마이클 무어의 움직임은 하나의 예술가가 사회적 문제에 얼마나 명료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만화라는 매체로 무어만큼이나 커다란 반향을 만들어낸 사람이 있었다. 자칭 ‘언더그라운드 만화가이자 대중의 영웅’이며 동시에 ‘고집쟁이 늙은 얼간이’인 로버트 크럼이다.

<로버트 크럼의 아메리카>(새만화책 펴냄)는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가의 대표격인 로버트 크럼의 방대한 작품세계 중 미국사회와 정치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을 하는 만화들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다. 추한 외모와 시니컬한 말투를 지닌 만화가 크럼은 여러 작품들에 직접 등장해 쓰레기 더미로 바뀌어가는 미국, 인종주의로 뒤얽혀 있는 미국, 과격한 선동과 무책임한 혁명의 전쟁터인 미국을 까발리고 있다.

크럼의 가장 훌륭하면서도 논쟁적인 면모는 자신이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참으로 솔직하게, 심지어 무책임할 정도로 속시원하게 떠벌인다는 점이다. 그의 만화 속에서 미국의 대통령은 자신에게 주어진 강압감 때문에 고민하다가 자신이 무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핵무기 가동 버튼을 누른다. 잘 나가는 지식인들의 회의장을 점거해 폭력을 휘두르던 여성해방전선의 무력 선봉대장은 집에 돌아가 애인과 오럴섹스를 즐기며 ‘혁명 만세’를 외친다.

크럼이 현대 미국에서 싫어하는 점을 나열해볼까? 살찐 자본가와 대기업, 구호나 외치는 급진주의자, 반가운 척 내미는 손, 동성애 남자만 사귀는 여자, 카우보이와 교양없는 남부인들, 깜둥이와 대부분의 흑인계 너구리들…. 그럼 좋은 점은 뭐냐고? “글쎄 그 대답은… 별로 없어!” 크럼의 대표적인 테마인 섹스에 대한 작품들을 빠져 있지만, 크럼 자신의 비참한 아카데미 시상식 참관기,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의 속시원하면서도 낯뜨거운 인터뷰, ‘급살맞을 유대계놈들이 미국을 지배했을 때’와 같은 흥미로운 기록과 픽션들이 적지 않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