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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에 최고 배우 소리 듣고 싶다”
2004-10-13

영화 <S 다이어리> 김수로 인터뷰

그는 최고도 아니고 그렇다고 2등도 아니다. 아직까지 대표작도 없다. 하지만 그와 작업한 감독들은 모두 다시 작업하고 싶어한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은 그를 끔찍이 아낀다. 왜? 그의 연기력을 믿고, 그의 미래를 높이 사기 때문이다. 배우 김수로를 12일 만났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S 다이어리>에서도 그는 '원 오브 뎀(one of them)'이다. 이번에도 '온리 원(only one)'은 되지 못했다. 초짜 연기자 이현우, 까마득한 후배 공유와 함께 김선아의 한 남자를 연기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다. 시원하고 당당하게 웃는 그의 웃음 뒤에는 긍정적인 사고와 적당한 자존심, 그리고 부단한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대표작이 없어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 30대의 배우가 속없이 할 소리는 아닌 듯한데…."도대체 앞으로 어떤 대표작을 만날까 너무나 기다려지고 설렌다. 급하지 않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온다." 하! "49살 안에 한편 나오지 않을까. 50대에 접어들면 '좋은 연기자'라는 소리를 들을 거고, 60살 때 최고의 배우 소리를 들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오래 가는 배우, 늙어서 더 대접받는 배우가 되겠다는 각오다. 주판알 튕겨보자. 이만큼 원대하고 야심한 꿈이 어디 있는가.

"백윤식 선배를 보라. 준비돼 있지 않았다면 기회를 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기회가 올 것이라 믿으며 꾸준히 준비를 탄탄히 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로는 이날 갈색의 세련되고 심플한 셔츠를 입고 나왔다. 강제규 감독이 선물해준 것이었다. "강감독님이 인터뷰하면서 티 좀 내라고 하셨다"며 웃는 그에게 강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가장 악랄한 캐릭터 중 하나를 맡겼다. 북한군에 부역한 양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완장'이었다. 아주 짧게 등장했지만 그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코믹함은커녕 서늘함이 묻어났다.

"많은 감독들이 날 코믹하게만 보지만 나를 아는 감독님들은 내게 진지한 연기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한다. 강제규 감독님과 박정우 감독이 대표적이다. 박감독 역시 차기작에서는 내게 악역을 주려고 한다. 악역을 맡으면 로버트 드니로처럼 관객의 혼을 빼는 연기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는 현재는 코믹함의 대명사다. <S 다이어리> 관련 행사에서 그가 마이크를 잡기만 하면 좌중에서는 폭소가 터져나온다. 물론 그 역시 쇼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최선을 다해 웃음을 유발하려 노력하지만, 그와 별도로 대중은 그의 얼굴만 봐도 웃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그는 '본의 아니게' 코믹한 이미지로 시장에서 승부를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못하겠다. 사람들이 말만 하면 웃는 통에 어떤 때는 당황스럽다"며 웃는 그는 <S 다이어리>에서도 가장 성실하게 웃긴다. 김선아의 두번째 남자이자, 치사하게 그녀의 등을 치고 부잣집 여자한테 장가가는 쩨쩨한 교통 순경. "코믹 연기는 분석을 수십 배는 더 해야 한다. 또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는 상황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때문에 시나리오가 걸레가 되도록 보고 또 봐야 한다. 그래야 나를 버리고 상황에 충실할 수 있다. "

재미있는 에피소드. 김선아가 아니라 김수로가 베드신을 겁냈다? "나 희한하게도 보수적이다. 예술적으로 포장되지 않을 거라면 우리나라 영화에서 베드신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독님과 엄청 싸웠다. 감독님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표현하려고 했지만, 내가 결사반대해서 결국 선아와 나의 베드신은 이불로 덮였다. 오죽하면 선아가 '웃겨 정말, 내가 할 말을 자기가 다하네'라고 말했을까."

김수로의 <S 다이어리>에는 몇 명의 여자가 등장할까. "어유, 재미있겠다. 그 얘기 그대로 한번 영화로 찍어봤으면 좋겠다"며 능청을 떤 그는 이내 "2명"이라고 짧게 답했다. 만일 극중 김선아처럼 과거의 여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해온다면? 극중 김수로는 이 부분에서도 상당히 치사하다. "난 다 줄 것 같다. 그것도 내 복이지 않나." 지금 그는 '웃기는 배우'다. 하지만 언제 우리를 울릴지, 소름 돋게 할지 모른다. 준비된 연기자가 한발한발 내딛는 발걸음은 관객을 즐겁게 긴장시킨다.

서울=연합뉴스, 사진=씨네21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