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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 스펄록 감독의 <슈퍼 사이즈 미> 제작 비화
2004-10-12

'맨몸'으로 맥도널드를 꺼꾸러뜨리기까지

극장 안에 불이 꺼진다. 스크린에 빛이 투사되고, 홍보물 상영이 끝나면 영화가 시작된다. 객석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창 들린다. 팝콘을 으스럭거리며 씹는 소리, 츠읍 하며 스트로우를 통해 콜라를 마시는 소리. 20분 뒤. 극장 안에서 팝콘 먹는 소리나 콜라 마시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식욕을 똑 떨어뜨린 이 영화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 영화는 공포 물도, 슬래시 호러 물도 아니다. 패스트푸드를 먹는 인간에 관한 다큐멘터리, <슈퍼 사이즈 미>이다.

모건 스펄록 감독은 TV에서 비만으로 고생하는 여학생 두 명이 맥도널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뉴스를 보고, 처음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맥도널드가 자신들의 음식은 비만과 연관이 없으며 건강에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본 스펄록 감독은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는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채식과 걷기로 단련된 자신의 건강한 몸에 맥도널드 음식만 세 끼를, 한달 동안 먹고 살기로 한 것이다.

섹스트러블까지 일으킨 패스트푸드의 해악

일단 자신의 몸으로 맥도널드 음식의 해악을 증명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뒤, 스펄록 감독은촬영에 들어가기까지 빠른 속도로 준비를 마쳤다. 6주 동안 그는 미국 음식 산업과 음식문화에 대해 조사했고, 실험 전 몸의 의학적 상태를 전문의들에게 진찰받았다. 촬영비는 MTV에서 방영되었던 그의 프로그램 <I Bet You Will>의 수익금 5만 달러가 종잣돈이 되었다. 일견 충동적으로까지 보이는 시작에 비해 <슈퍼 사이즈 미>는 선댄스영화제에서 6만5천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2천7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올해 말까지 50개국 이상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실험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스펄록 감독의 건강은 혈압, 체중, 지방간 등 모든 면에서 나쁜 쪽으로 치달았다. 영화 속에는 그가 처음 자신이 정한 규칙대로 햄버거를 마지막까지 꾸역꾸역 먹다가 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몇 번이나 토했냐는 질문에 “그때 한 번 뿐이었다”고 웃어넘겼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3주쯤 시간이 지나고 나자 의료진들은 물론이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 모두 나서서 당장 그만둘 것을 권유했다. 그의 여자친구는 그의 배가 나오고 짜증이 늘어난 것 뿐 아니라 섹스도 불만스럽다고 영화에서 털어놓은 바 있지 않던가! (그의 여자친구는 채식주의 요리사이자 채식주의를 기본으로 한 식이요법 카운셀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촬영이 끝난 뒤 스펄록 감독의 ‘해독’을 도운 당사자로, 이번에 스펄록 감독과 함께 부산을 방문했다.) 스펄록 감독은 “모건, 다들 그 쓰레기 같은 음식을 평생 먹고 살아. 9일 더 한다고 죽기야 하겠니?”라며 프로젝트를 끝까지 진행하라는 큰 형의 말에 힘을 얻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촬영 뒤 그의 몸이 본래 상태로 돌아오기까지는 7배나 되는 시간이 걸렸다. 실험이 끝난 뒤 2개월이 지나자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는 원래대로 되돌아왔지만, 촬영 중에 찐 몸무게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는 14개월이나 걸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한 가지. 맥도널드의 촬영 방해공작은 없었을까? “내가 별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스펄록 감독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영화가 공개되자 맥도널드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 같다며 “앞으로는 맥도널드 매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웃어보였다. 문제는 맥도널드의 뿐이 아니라 맥도널드의 눈치를 보는 방송사들. MTV의 경우, 패스트푸드 사와의 협찬 문제 때문에 <슈퍼 사이즈 미>의 트레일러와 클립 방영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후에 번복하는 일이 있었다. 해외 방문을 해도 방송 매체에서 이 영화에 대해 유난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스폰서의 입김이 방송과 같은 가장 대중적인 언론 매체의 발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은 스펄록 감독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가 <슈퍼 사이즈 미>를 가지고 미국과 해외의 시사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발언의 자유가 있다-단 스폰서의 이의 제기가 없다면” 정책이니 말이다. 단지 방송 매체에 대해 고마워 할 일이 있다면 리얼리티 쇼의 범람 덕분에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일이다.

아이들을 열광시킨 다큐멘터리의 탄생

영화에 삽입된 두 학교의 급식 환경 비교(냉동음식 vs 건강식) 대목은 사실 우연한 계기로 찍게 된 것이었다. 체육 프로그램이 잘 짜여진 한 학교를 촬영하러 간 스펄록 감독은 촬영이 끝난 뒤 식사를 하기 위해 교내식당에 갔다. 최고 수준의 체육 프로그램에 걸맞지 않는 끔찍한 식단을 보고 기겁한 스펄록 감독은 그 상황을 화면에 담았다. 영화 개봉 뒤 “우리 아이들에게 뭘 먹이고 있는거냐”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쳐 그 학교의 급식 환경은 변하게 되었다. 맥도널드 역시 공식적으로는 <슈퍼 사이즈 미>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슈퍼 사이즈’를 없애고 샐러드 등의 건강식을 메뉴에 추가했다. 미국이 아닌 국가들에서는 <슈퍼 사이즈 미>를 보고 ‘미국화’ ‘맥도널드화’로 인해 사라져가는 자국의 문화적, 식생활적 전통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스펄록 감독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스펄록 감독은 한국에 와서 맥도널드를 찾은 적이 있을까? 그는 “절대, 절대, 절대 부산에서 맥도널드는 가지 않겠다”면서 “세계 어디건 그 나라 음식을 맛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친구가 “한국 맥도널드는 미국하고 맛이 다르더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미국 맥도널드가 다른 나라의 맥도널드와 다른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슈퍼사이즈’. <슈퍼 사이즈 미>는 ‘무엇이나 거대한 나라’, 더 큰 햄버거와 더 큰 프랜차이즈가 더 많은 사람들을 ‘슈퍼 사이즈’로 만드는 나라 미국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스펄록 감독은 “미국은 곰팡이 같다”고 말했다. “상상해보라. 처음에 팔 어딘가에 ‘미국’이라는 작은 곰팡이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이봐, 여기 작은 미국이 생겼어’라고. 하지만 그 곰팡이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당신의 몸을 좀먹어간다. 그리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는 온 몸을 곰팡이가 좀먹어버리는 형국이 되고야 만다.”

<슈퍼 사이즈 미>의 가장 큰 강점은 다큐로서의 ‘고발’과 ‘정보’를 풍부하게 갖춘 동시에 ‘재미’있다는 것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 9/11>를 찍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향을 부인하지 않는 스펄록 감독은 이 영화의 타겟을 이미 비만으로 고생하는 성인들 뿐 아니라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잡았다. 뮤직비디오,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펄록 감독은 어린이들도 쉽게 흥미를 갖고 집중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과 광고의 연출 기법을 혼용했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스펄록 감독은 어느 날 댈러스에 사는 한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슈퍼 사이즈 미>가 <트로이> <반 헬싱>과 나란히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더라! 금요일 밤 표는 매진이고 1/2은 애들이던데” 그는 부산 방문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미국의 중, 고등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영화 상영과 강연을 할 예정이다.

글=이다혜 사진=장은주